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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

by 정암 201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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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

 

수당대(隋唐代) 우두선(牛頭禪) 개조(開祖), 윤주 (潤州 강소성) 연릉사람 성은 위(韋)씨.

처음에 유교를 배우고 군서를 연구하면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뒤에 모산(茅山 강소성)의 경법사(炅法師)에게 중이 되어 수학하다.

림중(林中)에서 단좌(端坐)하기 20년 정관(貞觀) 17년(643) 건강 우두산 유서사 (建康 牛頭山 幽棲寺) 북쪽에 선실(禪室)을 짓고 지내다가 어느날 도신(道信)이 와서 일러줌을 받고 심요(心要)를 깨닫다.

647년 법화경(法華經)을 강의하여 기서(奇瑞)를 얻고, 영휘 3년(永徽3년 652) 건업 건초사(建業 建初寺)에서 대품반야경을 강의하고 다시 기서(奇瑞)가 있었다. 고을 원인 소원선(蕭元善)의 청으로 건업 건초사에서 법윤(法輪)을 굴리다가 현경(顯慶)2년 윤정월 입적하다. 세수 64세.

師는 절에 양식이 모자라자 80여리 떨어진 단양(丹陽)에서 매일 일석팔두(一石八斗)를 져다가 300대중을 공양(供養)하다.

게송에 ‘산전탈속반(山田脫粟飯)과 야채담황제(野菜淡黃虀)에 끽칙종군끽(喫則從君喫)하고 불끼임동서(不喫任東西하노라)’ *또 4조도신(四祖道信)과의 관계는 속고승전(續高僧傳) 26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우두산 --新塔記](829)와 李華의 [潤州鶴林寺--碑銘] 등을 비롯한 후세의 자료는 道信의 일러줌을 인하여 심요를 깨달았다고 전한다.(속고승전26, 塔銘, 弘贊法華傳3, 조당집3, 전등록4, 통재12) 저서:[絶觀論 1권]

관련글 : 우두종(牛頭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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