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by 정암 2011. 4. 19.
반응형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불교의 개조. 기원전 623년 인도 가비라성(迦毘羅城)의 성주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아래 태어났다.

석가(釋迦)는 석가족을 이르며 모니(牟尼)는 성자(聖者)다. 즉 석가종족의 성자라는 의미다. 범어로는 사캬무니. 능인(能仁), 능인적묵(能仁寂?), 황면노자(黃面老子), 석씨(釋氏)라고 풀어 쓴다.

성(姓)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태어나는 순간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쳤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인간의 선언은 그로부터 전무후무했다. 석가모니의 탄생선언이자 진리불멸의 위대함을 선포한 것이다.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죽자 이모 마하파사파제(摩訶派?派提)의 손에서 자랐다. 자라는 동안 여러 사상과 철학, 문학과 기예를 배웠다. 그러다가 19세에 구리성(拘利城)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했다. 그러나 성문밖에서 생노병사의 고통과 시련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 29세때였다. 람마성 숲속에 속의(俗衣)를 벗어 던지고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대출가를 선언한 것이다. 그후 발가바, 아람가람, 울다라 등의 선인(仙人)들을 만나 6년간 갖은 고행을 했다. 하지만 금욕의 부질없음을 알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7일간 명상 끝에 대각을 이루었다. 35세때의 일이었다.

제일 먼저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를 교화했다. 다음으로 3가섭, 사리불, 목건련 등을 제도한 후 교단을 조직했다. 또한 빈바사라, 아사세, 비사닉등 여러 왕 등을 교화제도하여 불교의 외연을 넓혀 나갔다. 그러다가 기원전 544년 2월 15일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娑羅雙樹)아래에서 열반했다. 세수는 80. 45년간의 위대한 전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반응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장(錫杖 Khakkhara)  (0) 2011.04.20
석마지옥(石磨地獄)  (0) 2011.04.20
시식(施食)  (0) 2011.04.19
삼보리  (0) 2011.04.15
사선법(四善法)  (0) 2011.04.15
삼보(三寶)  (0) 2011.04.15
삼도천(三途川)  (0) 2011.04.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