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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산문(鳳林山門)
신라말 선승 현욱(玄昱)의 제자 심희(審希)가 효공왕때 경남 창원 봉림산에 봉림사를 세우고 개창한 산문. 현욱은 헌덕왕때 당나라에 가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장경회휘(章敬懷暉)로부터 법을 전수받았다. 희강왕 2년인 837년 귀국했다.
처음에 실상사(實相寺)에 있다가 혜목산(慧目山) 고달사(高達寺)에서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혜목산선사라고 불렸다. 이러한 현욱의 뒤를 이은 심희는 창원 봉림산에 절을 짓고 종풍을 드날렸다. 하지만 스승인 현욱이 머물던 혜목산을 따서 혜목산문이라고도 한다. 스승과 제자가 사자상승(師資相承)하여 구산선문의 일파를 개산한 것이다. 심희가 입적하자 신라 경명왕(景明王)이 직접 애도문을 지을 정도로 명망이 드높았다. 제자로는 경질(景質) 융제(融諦) 찬유(璨幽) 등 수백명의 고족(高足)들이 뒤를 이었다.
봉림사는 지금은 폐사되어 문화재 몇 점만 보존되어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보물 362)과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보물 363), 경남 창원시 봉곡동(鳳谷洞)에 있는 지귀동 봉림사지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2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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