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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나옹혜근(懶翁慧勤,1320-1376)

by 정암 201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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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혜근(懶翁慧勤,1320-1376)

고려때스님, 이름은 원혜(元惠) 법명은 혜근 호는 나옹, 또 江月軒이라 했고 성은 牙씨, 寧海사람.

태어나면서부터 골상(骨相)이 비범하고 영특하였다.
20세때에 이웃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어른들에게,‘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으므로 功德山 妙寂庵(지금의 사불산 윤필암 四佛山 潤筆庵)의 了然선사에게 가서 祝髮得度하다.

 了然이 나옹에게,
‘네가 여기에 온 주인공 그것이 무었이냐?’라 물으니
나옹은,‘능히 말하고 듣는 그것이 왔습니다. 그러나 보려해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읍니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읍니까?’ 하니 요연이,‘나도 너와 같이 말도 하고 듣기도 하는 그 주인공을 알지 못한다. 다른 곳에 가서 가르침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至正4년(1344) 양주 회암사에서 4년간 坐禪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때에 일본승려 石翁이 禪床을 치며,‘大衆還聞麽’하고 물으니 師가 게송으로,‘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하였다.

 1348년 3월 大都(北京) 法源寺에서 指空禪師를 뵙고
지공問曰,‘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師曰,‘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神通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보여 보아라’하니, 師가 지공에게 가까이 가서 가슴에 손을 포개어 叉手하고 서 있었다.
뒤에 게송을 지어 指空선사에게 드렸으니,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亦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1350년 8월 남쪽으로 내려가 淨慈寺 平山處林선사를 친견하였다.
平山問曰,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師曰,‘大都에서 왔습니다’
‘일찌기 누구를 만나고 왔는가?’
‘西天 指空선사를 만났읍니다’
‘지공은 매일 무엇을 하는가’
‘지공은 매일 千劒을 씁니다’
‘지공의 千劒은 그만두고 너의 一劒을 내놓아라’하니 師가 坐具로 평산을 후려쳤다.
평산이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이 나를 죽인다’고 소리치자 師가 평산을 일으켜 세우며,
‘吾劒能殺人 亦能活人’이라 하니 평산이 크게 웃고 손을 잡고 方丈으로 가서 차를 권하며 몇달을 묵어가게 하였다.
 평이 어느날 信表로 法衣 한 벌, 拂子 하나를 주었다.

1358년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하다가 恭愍王이 청하여 내전에서 法門을 듣고 神光寺에 있게 하다.
그후 淸平寺에 주하다가 1370년 廣明寺에서 왕이 親臨한 가운데 ‘工夫禪大會’를 主宰하고 이듬해 王師가 되어 松廣에 주하였다.

1372년 우연히 지공선사의 ‘三山兩水之記’를 생각하고 檜巖寺를 重修하여 文殊會를 열어 낙성하였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賓天하고 1376년 우왕의 칙명으로 밀양 靈源寺로 가다가 驪州 神勒寺에서 입적하다. 師가 示寂할 적에 오색구름이 산위를 덮고 茶毘를 하니 頭骨 5片과 牙齒 40개는 타지 않았으며 舍利는 수없이 많았다 한다.

나이 57, 시호는 禪覺 또 普濟尊者. 李穡이 碑銘을 지어 碑와 浮屠가 회암사에 있다.
(보제존자나옹화상行狀, 보제존자諡禪覺塔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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