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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
신라말의 고승 쌍봉선사(雙峰禪師) 도윤(道允)과 그의 제자 절중(折中)에 의해 개창된 산문이다. 도윤은 825년 당나라로 건너가 남전보원(南泉普願)에게서 법을 배웠다. 847년 귀국해서 능주(綾州?화순) 쌍봉사(雙峰寺)에서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도윤의 뒤를 이은 절중(折中)이 영월 사자산(獅子山) 흥녕사(興寧寺)에 자리를 잡고 산문을 열었다. 신라말기 징효(澄曉)때 가장 번창했다. 944년에 건립된 그의 탑비인 영월흥녕사징효대사탑비(寧越興寧寺澄曉大師塔碑)는 보물 제6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흥녕사는 891년 화재로 사라진뒤 944년 다시 중건했으나 역시 화재로 회진되었다. 이후 1천년이 넘도록 폐사로 있었다. 이후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고 법흥사(法興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로도 소실과 중건을 거듭했다. 흥녕사는 절이름처럼 그리 흥녕(興寧)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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