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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불교

by 정암 201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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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불교

불교가 스리랑카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 경 아쇼카왕의 아들(또는 동생) 마힌다 장로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기원전 1세기에 경․율․론 삼장을 스리랑카 문자로 서사(書寫)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가지 남방불교에서 성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팔리어성전이다.

5세기 경에는 '붓다고사'라는 대학장(大學匠)이 나와 거의 모든 성전에 주석을 만들어 교의를 집대성했다. 스리랑카 불교는 이후 그에 의해 확립된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킬 것을 전통으로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과 계율을 중시하는 남방불교의 태도는 북방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보수적이고 소승적(小乘的)이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계율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상가의 청정성을 유지하는 것 등은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상좌부는 11세기에는 미얀마로 이식되었고 13세기에는 타이로 전파됐다. 타이에서 다시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 남부지방까지 전파돼 오늘의 남방불교를 완성했다. 한때 스리랑카 상좌부는 법통이 단절된 일도 있었으나 미얀마로부터 승려를 영입, 부활되었고 다시 법통이 끊기는 사태가 생기자 타이로부터 승려를 맞아들였다. 남방불교에서는 이처럼 상가를 교류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동일한 법통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는 이밖에도 과거에 말레이반도에서 수마트라․보루네오 등에 걸쳐서 많은 불교도가 존재했었다. 이들 지역에 들어온 불교는 8~9세기 경 동인도와 남인도에 의한 식민지 건설과 함께 보급된 것으로 힌두교와 혼합된 밀교적 대승불교였다.

그러나 이 지역의 불교들은 인도본토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침입과 함께 소멸해 버리고 오늘날에는 유적만 곳곳에 남아 있을 뿐이다.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교단이 확립된 스리랑카 상좌부가 오늘날까지 번영하고 있는 반면 밀교와 대승불교가 이 지역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은 불교본연의 자세에 대해 무엇인가를 사사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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