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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장경호(張敬浩:1899-1975)

by 정암 201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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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張敬浩:1899-1975)거사

실업가, 불교 대중화 운동의 선구자. 자호는 대원(大圓), 본관은 仁同.
1899년 9월 7일 부산 동래구 사중면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張允植, 어머니는 文念伊.
신심이 돈독했던 어머니를 따라 7세에 불교에 귀의했다. 14세에 普城高普에 진학했으며 18세에 秋命順(법명은 積善華)과 결혼하였다. 1919년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

그 뒤 日警을 피해 친구 許 政(정치인)과 함께 숨어 다니다가 일본으로 도피했다. 이듬해 귀국, 신앙이 더욱 깊어져 1925년 通度寺의 동안거에 동참하여 九河天輔(1872-1965)로부터 법문을 듣고 禪을 배웠다. 안거 해제일에 ‘商業에 종사하여 돈을 크게 벌어 불교에 바치겠다’고 맹서하고, 근검절약하며 사업을 폈다. 사업을 하는 중에도 죽을 때까지 1년중 동안거만은 절에서 수행에 몰두했으며 집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하루 4시간씩 참선에 몰두했다. 때로는 曉峰元明, 香谷蕙林, 鏡峰靖錫 등과 함께 정진했다.

손을 댄 사업마다 성공하여 마침내 1954년 동국제강주식회사를 설립, 모두 18개 회사를 거느리는 국내 5대기업의 하나로 성장했다. 불교의 大衆化를 위해 1967년 불서보급사를 세워 불교서적의 출판과 보급에 힘을 쓰며, 1970년 재단법인 ‘大圓精舍’를 세워 장학사업을 펴고, 수십 군데의 군부대와 사찰에 법당을 건립해 주는 등 각종불사를 지원했다. 1973년 5월 南山에 大圓佛敎會館을 건립하여 신행단체로서 대원회를 육성하였다. 또한 누차 불교방송의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성취하지는 못했다. 1975년 7월 당시 朴正熙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모든 私財 30억 6천만원을 내놓으니 불교중흥을 위해 써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이 해 9월 9일 죽었다. 이를 기본자산으로 하여 1975년 8월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회’가 설립되었으며 1990년 5월 1일 개국한 불교방송(BBS)의 설립기반이 되었다.[월간 대원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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