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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불교

by 정암 201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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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불교

조선후기의 명승으로는 연담(蓮潭:1720~1799), 백파(白坡: 1767~1852)등이 있다. 연담은 각종 사기(私記)를 저술해 교학 진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백파는 《선문수경(禪門水鏡)》등을 지어 선문중흥에 기여했다. 또 초의(草衣)는 내외학문에 정통한 고승으로 유학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범해(梵海)는 불교인명사전이라 할 수 있는 《동사열전(東師列傳)》을 썼다. 이밖에도 진하(震河)는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을 지어 여래선․조사선을 밝힘으로써 종풍을 떨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조선후기의 불교상황은 승려의 사회적 신분저하로 도성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 치욕적인 법령은 1895년 일본승려들의 탄원에 의해 해제되었지만 오랜기간 탄압에 의해 자립의 힘을 잃은 불교계는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대사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말았다.

1910년 한국은 일본에 치욕적인 합방을 당했다. 한일합병 후 일본은 한국불교를 통제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하고 31본산제(本山制)를 운영했다. 그들은 도 한국불교를 왜색화하기 위해 승려의 대처화(帶妻化)를 추진해 전통교단의 순수성을 파괴했다.

불교계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불교의 왜색화에 대항해 항일독립(抗日獨立)운동을 했다. 3․1운동때 불교계는 한용운과 백용성을 민족대표로 참여시켰으며 많은 선각적 고승들도 독립 운동에 앞장섰다.

해방이후 한국불교는 또 다시 시련을 맞았다. 국토의 분단으로 이북지역에서는 종교활동이 중단됐고 6․25동란으로 많은 사찰과 문화재가 손상을 입었다.

1954년 불교계는 일본이 남기고 간 왜색승풍(倭色僧風)을 청산하기 위해 정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대처측과의 싸움으로 번져 교단은 분열되고 말았다. 현재 한국불교는 최대종단인 조계종을 비롯 18개 종단으로 분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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