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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파와 유가행파

by 정암 201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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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파와 유가행파

대승불교는 주로 기원후 2세기에 남인도에서 태어난 나가르주나(龍樹)와 5세기 경 굽타 왕조 치하에서 활약했던 바스반두(世親) 두 사람에 의해 교리가 확립 조직되었다.

나가르주나는 《반야경》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공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구명해서 《중론》을 저술했다. 또한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반야경》을 주석하면서 대승의 교의를 정리했다.

그의 작업은 기초적이고 보편적이었으므로 후세의 불교도는 모두 그의 학설에서 기본을 추구하였다. 때문에 그는 중국․한국에서 '8종(八宗)의 조사'로 추앙받고 있다. 제자로는 아리야데바(提婆)가 있는데 그는 《백론(白論)》을 저술했다.

바스반두는 본시 경량부에 속해 유부의 개설서 《구사론》을 저술했는데 뒤에 형 아상가(無着)의 권유로 대승에 들어가 형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교리체계를 확립했다. 이런 체계는 나가르주나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마이트레야를 시조로 한다고 하는데 그 실천방법은 유가행이며 교리의 특색은 유식설에 두고 있다.

그는 마이트레야의 저서와 아상가가 쓴 《섭대승론(攝大乘論)》등에 주석을 쓰는 동시에 몸소 《유식30송》등을 저술했다. 한역의 《성유식론(成唯識論)》은 그 주석서다.

바스반두 계통은 그 후 대승불교의 주류가 되어 번영했다. 이 유가행파의 유식설은 마음의 분석을 주로 하는데 유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아비달마적 경향을 가진 번쇄한 교학으로 변해갔다.

한편 이것에 대항해 6세기에는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계승한 중관파(中管派)가 대두하여 양자 사이에 눈부시도록 화려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런 논쟁의 과정에서 디나가(陳那)와 달마키르티(法稱)의 노력으로 불교의 논리학(因明學)이 대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론적 발전은 대승불교를 결국 출가 승려에 의한 전문불교․학문불교로 연결시켜 본래의 재가불교적 색채를 점점 잃어가게 했다. 재가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승이 출가자 중심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대승불교 사상의 흐름으로서는 이것 외에 《법화경》의 일승의 가르침을 발전시킨 《승만경》과 《열반경》에서 보여지는 '여래장 사상'과 불성에 관한 것이 있다. 이것을 조직화한 논서로서는 《보성론(寶性論)》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만들어졌다. 학문의 계통상으로는 주로 유가행파에 속하는 것이다.

7세기 경 현장(玄裝)과 의정(義淨)이 인도를 방문했을 무렵 대승불교는 중관(中觀)․유가행(瑜伽行)의 두 파가 있었고 부파 불교에서는 유부와 경량부 그리고 정량부 등이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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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친(世親, Vasuband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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