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橋慢)
자신을 높게 평가해 반성함이 없음. 지금은 <騎慢>이라고 쓰고 있으며, 잘 아는 바와 같이 교만 떨다가는 언제고 큰 코 다친다든가, 교만한 사람 치고 성공하는 사람 없다든가,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말이 있듯이 교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삼가야 할 마음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탁발을 한다든가 만행(萬行)을 함으로써 교만심을 없애고 하심(下心)하는 수행을 한다.
잡아함경 출요경(出曜經), 불소행찬(佛所行讚), 유가론(瑜伽論), 유마경, 무량수경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뜻은 지금 쓰이는 것처럼 스스로를 높다고 생각하고 남을 깔보는 마음, 즉 잰 체 하고 뽐내며 방자함을 일컫는 말이다.
옛적 대승의장(大乘義章: 수나라 혜원이 지은 일종의 불교 용어 사전)에 '스스로를 높이어 남을 능가함이니 이를 교만이라 한다' 구사론에는 '마음이 높아 반성하는 바가 없다'고 했다. 또 법화경 서품에 석존께서 막 법화경을 설하시려고 할 때 5백의 무리가 퇴장하는 장면이 벌어진다. 이때 석존께서 이들을 <증상만>(增上慢)이라 하시었다. 즉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는 교만함을 일컬으신 것이다.
또 법화경 상불경보살품(第二十)에는 상불경이라는 보살이 지위의 높고 낮음, 귀천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만나는 대로 합장하고 [나는 그대를 존경합니다]하고 합장 예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상대가 때리거나 욕을 해도 여전히 합장 배례하고 '나는 그대를 존경합니다'라고 했다니 이 보살이야말로 하심의 본보기라 하겠다.
현대인들은 너무 교만하다. 고도의 기계문명 덕으로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고, 우주여행을 하게 되자 대자연 대우주에 대한 외경심이 없는 교만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모름지기 현대인은 우서 대자연에 대해 하심하고 내 이웃에 대해 하심하고 나 자신에 대해 하심 하는 겸손을 배워야겠다. 교만 역시 번뇌의 씨앗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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