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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15

즉심시불(卽心是佛) 즉심시불(卽心是佛) 즉심즉불(卽心卽佛), 시심시불(是心是佛)과 동의어. ‘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진리’라는 뜻. 그러므로 그대의 마음이 곧 깨달아야할 대상이라는 뜻. 마음의 실체, 마음의 움직임을 낚아채면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여기서 ‘부처’란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을 가리키거나 인격화된 명칭이 아니라, 불교적 진리의 대명사로서 ‘부처’이다. 문제는 마음의 어떤 부분, 어떤 점을 깨달으라는 것일까? 혹 인체 가운데 마음은 어디쯤 있는지? 마음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말은 본래 청정한 마음(불성)을 복원시키라는 것이다. 반대로 순간의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그대의 마음, 무상한 것에 인생을 바치는 그 마음의 실체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엉뚱한 데서 찾지 말라는 뜻이다. 마음이 곧 부.. 2011. 8. 8.
진여(眞如) 진여(眞如) 범어 tathata. 우주 만유에 보편(普遍)한 상주불변하는 본체.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있는 그대로의 본성, 상태. 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진리의 세계 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우주 그 자체.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대승불교 이상개념(理想槪念)의 하나로서,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뜻과 변천하지 않는 여상(如常)이라는 뜻을 합친 것으로, 사람의 일반적 사상개념으로는 미칠 수 없는 진실한 경계를 일컫는다. 오직 성품(性品)을 증득(證得)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진여에 대해서는 지론종․섭론종․유식종․대승기신론 등의 학설이 있다. 에서는 진여가 잠연적정(湛然寂靜).. 2011. 8. 2.
성불(成佛 성불(成佛)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거룩한 성인이 되라는 뜻.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찾으라는 의미. 불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見性)했다고 해서 그것으로서 부처가 된 것(成佛)은 아니다. 부처란 기능적으로 지혜가 작용되어야 한다. 지혜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아직 완전한 부처가 아니다. 전시관에 세워져 있는 차는 차가 아니다. 고장 난 차, 서 있는 차는 자동차가 아니다. 시동이 걸려 있지 않은 차는 아직 달릴 수 없다. 자동차로서 기능이 가동되었을 때만 자동차다. 2011. 5. 17.
견성(見性) 견성(見性) 본래 그대로의 자기의 본성을 보는 일. 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을 선종(禪宗)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말한다. 선(禪)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불성(佛性) 그대로이며 그 밖에 본성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없다고 본다. 이 불성을 열어 나타내는 것이 견성성불이다.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이라 한다. 관련글 견성성불(見性成佛) 선종의 유래 선종 2011. 1. 18.
본래면목 (本來面目) 본래면목 (本來面目) 본지풍광(本地風光)이나 자기본분(自己本分)이라고도 함.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있는 심성(心性)을 형용하는 선문(禪門)의 말. 자기 본디의 모습 또는 중생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을 말한다. ‘본디 모습’ ‘원래 얼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고 외형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철학적인 의문사로서 ‘본래적 자기(自己)’ ‘나’ 혹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본성. 오염되지 않은 본래 마음. 선에서 말하는 본래면목은 ‘너의 본 모습은 무엇이냐’고 묻는 정형구로서 ‘어떤 것이 깨달음의 세계인가’ ‘무엇이 진리인가?’라고 묻는 말과 같다. 세칭 인간성이나 사람 됨됨이를 묻는 말이 아니라 철학적 정체성을 묻는 말이다. 불성과 동의어로서 선의 .. 2010.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