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의 열반관
부처님의 죽음에서 최고의 이상경(무여의열반)을 발견한 불제자들은 육체의 사멸을 열반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생각게됐다. 이것을 '회신멸지(灰身滅智)' 즉 몸이 재가 될 때 인식작용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는 열반의 세계 피안을 별개의 세계에서 찾지 않고 생사윤회의 세계 그대로가 마음의 전환에 의해 열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중생을 구하는 부처님의 자비가 강조된다.
대승의 이상상(理想像)으로서 보살은 부처님의 자비행을 대행하는 존재다. 보살은 중생이 있는 한 피안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 세상에 머물며 중생구제를 위한 삶을 산다. 대승경전은 이 보살의 삶을 가리켜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 부르고 있다.
무주처란 지혜로운 존재이므로 생사윤회에 머물지 않으며 자비로운 존재이므로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승불교는 또한 깨달음(悟)과 깨달아진 진리(法) 그리고 깨달은 자(佛)의 3위가 일체라고 생각했다. '진리와의 한 몸'은 대승불교의 구극적 절대가치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보리․열반은 무위(無爲)․진여(眞如)․법계(法界)․제일의제(第一義諦)․연기(緣起)․공성(空性), 나아가 부처님․여래․법신과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이론상 이것은 존재, 즉 실유는 아니지만 가치적으로는 실재로서 표현되어진다. 예를 들면 <대승열반경>의 '여래상주(如來常住) 무유변이(無有變易)' 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4바라밀'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지혜가 깨달음의 불가결한 덕이 되어 부처님과 보리가 동일시된다.
또한 미오(未悟,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깨달음의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깨달음을 이룰 것을 전제로 해서 여래장(如來藏) 또는 불성이라 부르고 이것을 진여․법신과 동일시하는 학설도 나타났다. 이럴 경우 깨달음(悟)과 아직 못 깨달음(未悟)는 무구진여(無垢眞如)와 유구진여(有垢眞如), 이구청정(離垢淸淨)과 본성청정(本性淸淨)으로 구별된다. 똑같은 의미로서 여래장은 '재전위(在纏位)의 법신'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일원적인 사고는 모두 대승불교의 특색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화엄이나 선(禪)을 통해 이러한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깨달음도, 깨닫지 못함도 똑같은 것이 되고 깨달음에의 길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불교의 정도를 일탈하는 것이 된다. 인도의 불교는 이런 점에서 특별히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실천의 '순서'를 중요시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불교와 크게 다른 점이다.
'다-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성제(道聖諦) (0) | 2012.04.20 |
---|---|
대범천왕(大梵天王) (0) | 2012.03.27 |
두타행(頭陀行) (0) | 2012.03.18 |
코살라국의 왕자 라마 (0) | 2012.03.03 |
리그베다 (0) | 2012.02.09 |
륵사바 (0) | 2012.02.09 |
다계라 (多揭羅) (0) | 2012.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