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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

대장경(大藏經)

by 정암 201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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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大藏經)

불교의 경(經) 율(律) 논(論) 삼장(三藏)에 주소(註疏)와 잡서를 포함한 일체의 총서.
삼장(三藏) 일체경(一切經) 장경(藏經)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경(經)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율(律)은 불교의 계율, 그리고 논(論)은 경과 율을 설명하고 해석한 것이다.

 원본 대장경은 팔리어와 범어(산스크리트어)의 두 종류가 있다.
이것이 외부로 전파되면서 티벳과 한역(漢譯)대장경이 출현한다. 거기에 만주, 몽골대장경까지 가세한다. 이중에서 그중 탁월한 것이 한역대장경이다. 실제로 불교연구의 저본(底本)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대장경이다.

 인도의 대장경이 중국이란 거대한 사상과 철학의 호수로 흘러 들어 온 것이다.
만일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오지 않았더라면 불교는 인도의 일개 지방종교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역대장경은 모두 사본이라 훼손과 분실의 위험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영구보존의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목판대장경이다. 물론 돌에 새긴 석경(石經)도 있으나 기념비적인 의미외엔 목판을 따라 갈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목판은 지속적인 인경(印經)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목판대장경의 효시는 송태조때 시작된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이다. 그러나 금나라의 침략으로 이 대장경은 사라지고 말았다. 두 번째가 이를 바탕으로 고려 현종때 만든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다. 이 판본은 강화도 선원사와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역시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이때 거란 흥종(興宗)도 고려를 본따 거란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1063년에는 거란 도종(道宗)이 대장경 전질을 고려에 보내왔다. 다시 고려 문종은 장경사업을 일으켰다. 이른바 속장경(續藏經)이다. 핵심인물은 바로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다. 이후 속장경은 변란과 내홍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간본(刊本)만이 일본과 한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이후 우리 민족 최대의 민족문화 사업이었던 해인사대장경이 조판되기 시작한다. 고려 고종대의 일이다. 1236년 조판의 감독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이 설치되었다. 판각은 강화도의 본사(本司)와 남해도의 분사(分司)에서 맡았다. 판목은 얼마전까지도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 최근에 이르러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밝혀졌다. 이 두 나무는 우리 토종나무중 가장 단단한 나무인 것이다. 이것을 바닷물에 담가 방부(防腐)를 했다. 그리고 잘 말려 조각을 했다. 당시 국력으로는 대단한 불사(佛事)였던 것이다. 이후 이 대장경은 수없이 인경(印經)작업에 들어 갔다. 인경도 조판 못지않은 대불사였다. 인도에서 시작된 대장경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와서 크게 꽃을 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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