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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쇼카왕

by 정암 201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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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왕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왕. 한역불전(漢譯佛典)에는 아육왕(阿育王) 아수가(阿輸迦)로 기록되어 있다. 마우리아왕조의 개창자인 찬드라굽타의 손자이며 빈두사라왕의 아들이다.

 마우리아왕조는 아쇼카왕 시절에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는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원래 아쇼카왕은 성질이 사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부왕이 죽은 후 배다른 형 수사마를 죽이고 즉위했다. 아주 광폭하고 잔인했다. 그런데 우연히 사문(沙門)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불교로선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제왕이 반 불교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한 일일 것이다.

 

아쇼카왕은 자신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석주(石柱)를 세우는 독특한 석주정치를 했다. 덕분에 아쇼카왕의 석주와 돌에 새겨진 조칙들은 불교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이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서 발견된 것도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어나 아마르어로 새겨진 것이었다. 그만큼 아쇼카왕은 당시 정복왕조의 제왕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던 것이다. 그러나 아쇼카왕은 곧 전쟁의 잔인함과 무모함을 깨닫고 불교의 전파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많은 불교사원과 복지시설을 세웠다. 아울러 세금을 경감시켜주고 도덕과 윤리를 새로이 확립했다. 심지어는 약초를 보급시키고 나무를 심기도 했다. 또한 도로, 관개등 공공사업을 벌이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가장 이상적인 불교의 제왕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불교설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아쇼카왕의 사절은 이집트와 마케도니아에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치세(治世)의 말년에는 불행한 삶을 보냈다. 왕의 사후 마우리아왕조도 기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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