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天台宗)
중국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를 개조(開祖)로 하는 불교의 한 종파.
후난성(湖南省) 남부 화룽현(華容縣) 출신의 지의는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河南省 남단)에서 혜사(慧思)에게 사사하여 선관(禪觀)을 닦고,《법화경(法華經)》의 진수를 터득한 뒤, 진릉(金陵:南京)에서 교화활동을 하여 많은 귀의자를 얻었지만, 575년 38세 때 저장성(浙江省)의 천태산(天台山)으로 은둔하여 사색과 실수(實修)를 닦았다.
이것이 천태종 성립의 단서가 되었으며, 지의는《법화경》에 따라 전불교를 체계화한《법화현의(法華玄義)》천태의 관법(觀法)인 지관(止觀)의 실수를 사상적으로 정립한《마하지관(摩訶止觀)》《법화경》을 독자적인 사상으로 해석한《법화문구(法華文句)》의 이른바 <법화삼대부경(三大部經)>을 편찬하였다.
이것은 중국․한국․일본을 일관하는 천태교학의 지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인도 전래의 불교를 중국 불교로 재편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의 문하인 장안(章安) 관정(灌頂)을 필두로 지위(智威)․혜위(慧威)․현명(玄明)을 거쳐 제6조 담연(湛然)으로 교학이 전승되었다.
그들은 지의의 삼대부경에 상세한 주석을 가하여《석첨(釋籤)》《묘락(妙樂)》《보행(輔行)》을 저술, 천태 교의를 선양하였고 초목도 성불할 수 있다는 초목성불설(草木成佛說)까지 전개하였다. 당나라 말기에 쇠했던 불교가 북송 때에 부흥하여 12조인 의적(義寂)과 그의 동문 지인(志因)의 양계통에서 많은 학승이 배출되었는데, 전자를 산가파(山家派), 후자를 산외파(山外派)라고 한다. 의적의 제자 의통(義通), 그 문하 지례(知禮)의 계통이 송대에 융성하여 천태종의 주류가 되었으며, 남송(南宋) 대에는 선월(善月)․지반(志盤) 등이 강학에 뛰어났고, 원대(元代)에는 불교 전반의 교학적인 쇠퇴와 함께 쇠하였지만, 명대(明代)에 다시 부흥하여 선(禪)과 정토(淨土)와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명 말기에는 지욱(智旭)이 교학을 진흥시켰다.
지의는 《법화경》의 정신을 근거로 전불교 경전에 의의를 부여하여 오시(五時:華嚴時․鹿苑時․方等時․般若時․法華涅槃時)의 교판, 화의사교(化儀四敎:頓敎․漸敎․密敎․不定敎) 및 화법사교(化法四敎:藏敎․通敎․別敎․圓敎)로 구분하였으며, 공(空)․가(假)․중(中)의 삼관(三觀)을 교의의 중심으로 하였다. 또한 일상심(日常心)의 일념 가운데 지옥으로부터 부처의 경지가 내재한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사상과 일체가 원융(圓融)한 실상(實相)을 주장하였다.
한국에서 천태종이 하나의 종파로 성립된 것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이르러서였지만, 그 교학이 전래된 것은 훨씬 이전이다. 신라의 현광(玄光)은 지의에게 法을 전한 혜사(慧思)에게서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배웠으며, 신라의 연광(緣光), 고구려의 파약(波若) 등은 직접 지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고려 제관(諦觀:960년 중국에 감)의《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는 천태학의 입문서로서 크게 성행하였다.
의천의 문하에 교웅(敎雄)․계응(戒膺)․혜소(慧素) 등이 유명하며, 그 후에도 덕소(德素)․요세(了世)․천인(天因) 등이 교세를 떨쳤다. 이와 같이 천태종은 고려 일대를 통하여 크게 성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척불정책으로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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