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사 부도전에 있는 혜덕왕사비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5)
관련사찰 : 금산사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2대 중창주이다. 법속성이 이씨(李氏)이며, 1038년(정종 4) 7월 3일 개성의 남쪽 불령리에서 중서령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민(民)이고 자는 범위(範圍), 법명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해린(海麟) 국사의 제자가 되어 『금광명경』과 『유식론』 등을 배우면서 법상종을 익혀나갔다. 12세 때 부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061년(문종 15년) 왕륜사(王輪寺)에서 열린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서 대덕(大德)의 칭호를 받았으며, 1069년에 중대사(重大師), 1071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중건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당시의 자세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가람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법화현찬(法華玄贊), 유식술기(唯識述記) 등을 비롯한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1083년(순종 1)에 개국사(開國寺)와 자운사(慈雲寺)에서 열린 승가고시 시험에서 화주를 맡았으며, 그 해에 승통(僧統)에 임명되어 잠시 현화사(玄化寺)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금산사에 돌아와 주석하다 1096년(숙종 1) 12월 18일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니, 세랍 59세, 법랍 48세였다.
그의 문하에는 도생(導生) 승통을 비롯하여 1천여 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숙종(肅宗)은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진응(眞應)이라 하여 탑비를 세웠다. 현재 이 탑비는 금산사의 부도전에 있다. <출처 : 한국전통사찰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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