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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신과 법신

by 정암 201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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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신과 법신

부처님의 본질에 대한 생각으로써 최초로 나타난 것은 '부처님은 진리(法)를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함의 경전에서 볼 수 있다. 아함에서 법(法)은 범(梵)과 대비되었다. 범에 대신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법이며 범의 인격화로서의 범천에 대신해서는 법의 인격화인 불이 대비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반드시 명백하지 않다.

부처님이 임종할 때의 표현 가운데 불의 본질을 알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계와 혜와 정과 해탈은 무상(無上)이다.

명성 있는 고타마에 의해서 이 법은 각지(覺知)되었다.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알고 비구들에게 법을 설했다.

고를 멸한 눈을 갖춘 스승은 반열반했다."

이에 의하면 계․정․혜․해탈 네가지 법과 또한 그것을 알았다고 하는 다섯 가지가 불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다섯 가지 자격 가운데 마지막 것은 나중에 '해탈지견'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 다섯 가지는 아비달마교의에서 '오분법신'이라고 한다.

여기서 법신이란 계․정․혜․해탈․해탈지견 등 다섯 가지 법의 집결을 말한다. 그러니까 법신이란 교법의 전체를 모아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부처님을 대신하는 것은 부처님이 남긴 가르침뿐이라는 해석이다(유교경). 이는 법신이라는 말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이다.

법신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첫째 부처님은 '법을 몸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어인 동시에 둘째로는 그 구체적 내용으로써 '5분에 의한 교법의 집합' 즉 8만 4천 법문이라는 두 가지 뜻이 부파시대의 아비달마 교학에서 성립되었다.

법신에 관한 논의는 나중에 80세로 열반한 부처님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그것이 육신(색신)이냐 법신이냐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유부 계통에서는 이에 대해 어디까지나 색신설을 채택했으나 대중부 계통에서는 법신의 화신설을 주창했다. 그리고 이 대중부 계통의 사고방식은 다시 대승불교의 불신론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 '만약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끝내는 부처(여래)를 보지 못하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말은 여래가 법을 떠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밖에 《반야경》에도 여러 차례 여래는 '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까지 '법신'에 대한 독립된 개념의 성립은 볼 수 없다.

나가르쥬나는 이에 대해 《방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서 불신의 '법신'과 '생신'으로 나누고 있다. 생신이라는 것은 부모가 낳아준 몸을 뜻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을 지칭한다. 법신과 색신을 나누는 2신설은 그 후 많은 대승 경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2신설과 앞에서 말한 정토의 부처님과 예토의 부처님의 구별을 합치게 되면 3신설이 성립되나 이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은 유가행파의 이론에 의해서다.

이와 같이 법신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불은 법을 몸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발전한 것이나 대승에서 확립된 것은 법이라는 것은 부처님에 의해서 깨달아진 법(所證의 법)으로서의 진리 그 자체이다. 이것은 부처님에 의해 가르쳐진 일체의 법(所說의 법, 교법)에 근원을 둔 것으로써 '법계(法界;聖法出生의 因)'로도 불려지며 또는 '법성(法性;법의 본성, 법의 본질)'이라고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의 모든 현상(일체법)의 근원이다.
이 법계는 공간적으로는 무한이라고 생각되어졌으며, 또한 시간적으로도 불변하고 상주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부처님은 본질에 있어서 이러한 법계와 일체이며 불 그 자체가 시간․공간으로 무한․불변한 절대적 존재라고 보고 이것이 법신(여래의 법신)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법신이라는 보편적 존재성 위에 존재하는 일체중생도 또한 그 본질에 있어서 법신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특히 여래장(如來藏)사상에서 발달된 생각이지만 가능성으로서는 이미 《화엄경》의 교리에 충분히 담겨져 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이같이 무한대한 공간에 침투한 존재로서의 법신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이 법신은 비로자나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인간의 언어로 설법하지 않으나 광명을 발하여 그것이 보살들의 머리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와 설법이 된다. 이것이 형상으로서는 경문이 된다.

비로자나불은 밀교에서 말하는 대일여래로서 설법하는데 이것은 여래의 3밀행의 하나인 구밀(口密;설법)이다.
이 경우 법신은 다른 쪽에서 볼 때 법계, 법성과 같은, 말하자면 '이(理)' 그 자체이나 동시에 불(佛)인 이상 그곳에 지(智;깨달음)의 계기가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 지(智)의 활동은 만물을 고르게 비추는 광명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은 만물을 기르는 태양 활동에 비유되기도 한다. 비로자나란 두루 비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뜻하는 말이다. 즉 법신은 이(理)와 지(智)를 겸비한 부처님을 의미하며 이것이 법신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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