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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영명(永明) (904-875)

by 정암 2011.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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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永明) (904-875)

항주 혜일 영명연수지각(抗州 永明延壽智覺) 선사다. 청원하(靑原下) 11세가 된다. 천태덕소(天台德韶)선사의 법을 이었다. 법안종(法眼宗)에서는 제3조가 되고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제6조로 잡는 다. 속성은 왕(王)씨, 절강성 항주부 여항에서 출생. 소년시절 부터 불법 에 뜻이 컸고 특히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여 들에서 암송하면 양떼가 감응 하여 엎드려 들었다고 한다. 벼슬을 하여 28세때는 화정진장(華亭鎭將)이 되었더니 그때의 오월(吳越) 문목왕(文穆王)이 그의 도심(道心)이 큰것을 알고 그의 뜻대로 출가하게 하였다. 처음 취암영명(翠巖永明)을 섬기어 온갖 대중시공을 갖추 받들었고, 그후 천태산 천주봉에 가서 석달동안을 지냈는데 날짐승이 머리를 앉고 옷소매에 둥지를 쳤다고 전한다.

천태산 덕소(德韶) 국사를 뵈오니 곧 큰 그릇임을 알아보고 법을 전하면서 이르기를 "너와 왕과는 인연이 있으니 앞으로 크게 불사를 지을 것 이다."하였는데 후에 과연 그와 같았다. 처음에 명주(明州) 영명사(永明 寺)에 있었는데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되었다. 영명사에 15년 있는 동안에 제자 천7백인을 제도하였고 천태산에 들어가서는 1만명에게 계를 주었으며, 저녁에는 귀신에게 시식하고 아침에는 방생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하였다. 매일 백여덟가지 일과 조록을 정하고 지켰는데, 그중에는 염불만도 10만번이다. 생전에 법화경을 1만3천번을 외웠고, 종경록(宗鏡錄) 백권,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6권, 유심결(唯心訣) 1권등 60여부외 에도 수백권의 큰 저술을 남겼다. 고려 광종(廣宗)과는 서신 거래가 많았는데 고려스님이다.

송 태조 개보(開寶) 8권, 대중에게 설법하고 가부좌 한 채 입적했다. 향수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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