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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개고
고는 감각이다. 감각으로서의 고(苦受)는 낙과 대비된다.
다시 말해 고는 낙이 있으므로 있는 것이다.
고가 없으면 낙도 없고 즐거움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그러니까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고 괴로움은 즐거움의 씨앗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삶을 모두 괴로움이라고 보기에는 저항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삶은 즐거움을 향한 진보이다.
많이는 아니라도 우리는 그것을 조금씩 성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어째서 고인가.
불교에서는 현실의 삶을 고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무상이고 무아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출발점은 이 고에 있다. 고가 없다면 불교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제(四諦)의 가르침은 현실을 고로 보고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고인가. 부처님은 이 고의 원인을 찾았다. 그 구극에서 발견한 것의 하나가 '갈애'라 불리우는 욕망 또는 집착(아집)이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무명'에 이르게 된다. 무명이란 진실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 즉 모든 것이 무상이고 무아라는 진실을 모르는 것이 무명이고 그것이 고의 원인인 것이다.
고는 인생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로 놔두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일체개고가 앞의 두 가지 명제와 다른 점은 일체가 고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고의 상대개념으로서의 낙이 아닌 고락을 떠난 이상으로서의 낙, 즉 열반적정이다.
제법무아
삼법인(三法印)
무아(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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