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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종
후한(後漢) 영제(靈帝)때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 전해지면서 정토종이 중국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후일 구마라집(鳩摩羅什)에 의해 정토교 경전이 번역되자 더더욱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도 불교의 전래코스인 실크로드에는 정토종의 그림과 조각 등 예술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동진(東晋)의 여산(廬山) 혜원(慧遠)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을 바탕으로 백련사(白蓮社)라는 염불단체를 만들었다.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염불결사인 것이다. 이것이 칭명염불(稱名念佛)을 주로 하는 정토종의 뿌리가 된다.
특히 정토종의 말법사상은 현실의 불안과 고뇌에 절망하던 많은 민중들에게 한줄기 햇살을 던져 주었다. 복잡하고 절차많은 기존의 종파와는 달리 아미타불만 염송하면 왕생극락할 수 있다는 교설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자력신앙인 불교의 이단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고통스런 현실보다 내세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던져주는 정토신앙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5세기 때 담란(曇鸞)은 정토종의 비조라 할 수 있다. 그는 보리류지(菩提流支)로부터 무량수경을 받고 정토염불의 수행자가 되었다. 정토종은 그의 후계자들인 도작(道綽)과 선도(善導)에게 이어져 중국 정토종의 맥을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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