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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문4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창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창 통일신라 후기에 접어들자 한국에는 선법이 전래되어 새로운 불교를 태동시켰다. 선은 중국에서 달마이래 종풍이 확립되어 종파로 성립 발전한 것으로 6조 혜능(慧能)에 이르러 남돈선(南頓禪)과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으로 나누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북종선이 전래되었다는 흔적만 있을 뿐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오직 남돈선 계통만이 크게 유포되었다. 남돈선을 처음으로 전래한 사람은 784년 입당(入唐)해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심인(心印)을 얻어 귀국한 도의(道義)였다. 그는 귀국 후 선법을 크게 일으키려하였으나 당시 신라에서는 선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설악산에 은거하면서 제자 염거(廉居)에게 법등을 전했다. 염거는 다시 체징(體澄)에게 법맥을 전했는데.. 2011. 12. 9.
성주산문 성주산문 신라 문성왕때 고승 무염(無染)이 충남 보령 성주사(聖住寺)에서 개창한 산문. 무염은 태종 무열왕의 8대손인 왕족이었다. 무염은 821년 당나라에 가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마곡보철(麻谷寶徹)에게 법을 배웠다. 그때 중국 사람들은 그를 동방대보살(東方大菩薩)이라고 추앙했다. 845년 귀국하여 왕자 흔(昕)의 요청을 받고 오합사(烏合寺)에 자리를 잡았다. 이 오합사가 후일 성주사(聖住寺)로 바뀐다. 무염은 경문왕과 헌강왕으로부터 국사로 받들어 졌다. ‘무설토론(無舌土論)’을 지어 선풍을 크게 떨쳤다. 무염의 제자로는 심광(深光) 현휘(玄暉) 활행(闊行) 대통(大通) 등이 유명하다. 관련글 : 구산선문(九山禪門) 희양산문 사굴산문 가지산문 수미산문 실상산문 사자산문 2011. 3. 11.
실상산문 실상산문 구산선문중의 하나로 신라 흥덕왕때 홍척(洪陟)이 전북 남원(南原)에 실상사(實相寺)를 창건하고 세운 산문(山門)이다. 홍척은 당나라로 건너가 유명한 선승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배웠다.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종조(宗祖)인 도의(道義)와 같은 스승밑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도의보다 늦게 귀국했다. 하지만 도의보다 먼저 산문을 열었다. 구산선문 중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은 영광을 얻은 것이다. 2011. 3. 8.
구산선문(九山禪門) 구산선문(九山禪門) 흔히 신라시대에 다섯의 교종 즉 오교(五敎)와 선법(禪法)에 9개 산문의 선맥 즉 구산선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료에 의하면 오교가 신라시대에 성립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고 구산선문도 신라 때가 아닌 고려시대에 완성됐다. 고려시대에는 화엄종 자은종 남산종 조계종 천태종 시흥종 신인종 총지종 중도종 도문종 등의 많은 종파가 있었다. 이 중 뚜렷한 활동상을 보인 것은 오교가 아나라 사교(四敎)인 조계종 화엄종 자은종 천태종이다. 조계종은 신라 말에 남종선이 전래되어 가지산 실상산 동리산 성주산 사굴산 사자산 봉림산 등 7파가 차례로 산문(山門)을 연 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어 고려대에 들어 오면서 진철대사(眞澈大師) 이엄(利嚴)이 수미산문(須彌山門)을 열고, 이어서.. 2011.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