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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2

희양산문 희양산문 희양산문은 고려 태조 18년인 935년에 정진국사(靜眞國師) 긍양(兢讓)이 문경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창한 산문이다. 희양산문의 개조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선문조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에 따르면 지증도헌(智證道憲)이 개산조사로 되어 있다. 긍양이냐 지증국사 도헌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긍양개산조사파에선 도헌이 봉암사를 먼저 세우기는 했어도 그를 희양산문의 개산조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헌이 북종선의 맥을 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례로 보건대 도헌과 긍양 어느 쪽으로도 쉽사리 무게중심이 옮겨 갈 것 같지는 않다. 긍양은 고려 태조 혜종 정종 광종의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형초 등 많은.. 2011. 1. 31.
함허 득통(涵虛 己和/1376~1433) 함허 득통(涵虛 己和/1376~1433) 조선 전기의 승려. 본관 충주(忠州). 속성 유(劉). 이름 수이(守伊). 법호 득통(得通). 당호 함허(涵虛). 1396년(태조 5) 관악산 의상암(義湘庵)으로 출가하였으며, 이듬해 회암사(檜巖寺)로 가서 무학왕사(無學王師)에게 법요(法要)를 배운 후, 여러 곳을 다니다가 다시 회암사에 가서 홀로 수도에 정진하였다. 그 뒤 공덕산(功德山)의 대승사(大乘寺), 천마산(天摩山)의 관음굴(觀音窟), 불희사(佛禧寺) 등에서 학인(學人)들을 지도하고 자모산(慈母山) 연봉사(烟峰寺)에 들어가 함허당(涵處堂)이라 이름하고 3년간 수도를 계속하였다. 1420년(세종 2) 오대산에 가서 여러 성인들을 공양하고 월정사(月精寺)에 있을 때 세종이 청하여 대자어찰(大慈御刹)에 머물렀.. 2010.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