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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수(思惟修) 사유수(思惟修) = 선(禪). 선나(禪那)를 번역한 말.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자세히 사유(思惟)하는 수행이란 뜻. 관련글 : 선지(禪旨) 선사(禪思) 2015. 9. 28.
하마선(下蟆禪) 하마선(下蟆禪) 두꺼비는 한갓 뛰는 것만을 알고 다른 활발한 활동을 알지 못하는 것이믈 선하는 사람이 한편에만 고집하고 자유로운 살림살이가 없는 이를 꾸짖는 말. 나뭇잎에 앉아 있는 두꺼비 모양이 좌선하는 것과 비슷함으로 좌선이라 이름을 붙임. 2012. 12. 1.
무진(無瞋) 무진(無瞋)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俱舍)에서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선(善)의 하나. 어떠한 경계에 대해서도 성내지 않는 정신작용 2012. 10. 16.
심인 (心印) 심인 (心印) 선(禪)은 문자(文字)와 언어(言語)를 내세우지 않고 바로 마음으로써 인(印)을 잡기 때문에 일컫는 말. 불심인(佛心印) 심(心)은 불심(佛心), 인(印)은 인가(印可)․인정(印定)의 뜻. 이 인(印)은 불법(佛法)의 실의(實義)를 인가(印可) 혹은 인정(印定)해 준다는 말. 2011. 6. 8.
일미선(一味禪) 일미선(一味禪) 참선하여 부처님의 참 뜻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경지를 이르는 말. 참선으로부터 돈오에 이르는 경지를 말한다. 순일미(純一味)의 선(禪)이란 뜻. 점진적으로 얻는 선에 대하여 돈오돈입(頓悟頓入)하는 선 2011. 2. 26.
무기 무기(無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성(性)으로 나눈 가운데서도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다같이 선악의 결과를 끌어 올 능력이 없으면서도 수행을 방해하는 유부무기와 방해하지 않는 무부부기가 있다. ⑴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의미한 질문에 붓다가 대답하지 않고 침묵한 것. ⑵선도 악도 아닌 것, 또는 그러한 마음 상태. ⑶아무런 생각이 없는 멍한 상태. ⑷기억이 없음 2011. 2. 10.
포행(布行) 포행(布行) 선(禪)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앉아서 하면 좌선(坐禪)이요, 걸어 다니면서 하면 행선(行禪)이다. 심지어 누워서 하면 와선(臥禪)이다. 사실 행주좌와(行走坐臥) 어묵동정(語?動靜) 어느 것 하나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포행(布行)은 좌선과 더불어 따라 다닌다. 선방에서 좌선을 하면 다리에 쥐가 나고 혈행이 안 좋아진다. 그래서 선방에선 50분 좌선에 10분 포행을 하도록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포행은 가볍게 걸으며 몸을 푸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포행은 시계바늘과 반대방향으로 돈다. 관련글 경행(經行) 경행(經行) 2011. 2. 8.
구두선 구두선 입에 붙은 선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다이 공부하고 실다이 깨칠 따름이요,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도 당한 것이 아닌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을 구두선이니 구두삼매니 한다. 2011. 1. 23.
견성(見性) 견성(見性) 본래 그대로의 자기의 본성을 보는 일. 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을 선종(禪宗)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말한다. 선(禪)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불성(佛性) 그대로이며 그 밖에 본성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없다고 본다. 이 불성을 열어 나타내는 것이 견성성불이다.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이라 한다. 관련글 견성성불(見性成佛) 선종의 유래 선종 2011. 1. 18.
선지(禪旨) 선지(禪旨) 범어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줄여 선(禪)이라 한다. 고요히 생각함(정려 靜慮), 생각으로 닦음(사유수 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엽악 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등으로 번역. 순수한 집중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밝히는 일(자정기의 自淨其意)이다. 그러므로 선(禪)은 선종(禪宗)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모든 수행의 방법이다. 염불이고 간경(看經)이고 순수한 집중을 거치지 않고는 삼매(三昧)가 나타날 수 없고 따라서 지혜의 눈도 뜰 수 없다. 이러한 보편적인 선이 종파적인 데에 치우친 나머지 그 본래의 의미는 변질되고 만다. 종파선은 달마(達磨)스님이 인도로부터 중국에 온 후 크게 발달하여 이른바 조사선(祖師禪)이 형성된 데서 비롯된다. 관련글 달마(達磨/?~528 ?) 삼매 (.. 2010.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