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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4

옥천신수(玉泉神秀, -706) 옥천신수(玉泉神秀, -706) 당대 오조홍인의 제자, 개봉(하남성) 위씨현사람 성은 李씨. 신장팔척 방미수목하여 위풍이 있었다. 장설의 비문에 의하면 유시에 경사를 배워 박종다문하였고 로장과 삼장에 두루 밝았다 한다. 무덕8년(625) 낙양 천궁사로 출가하고 기주 동산사의 홍인에게 참예하여 수시하였다. 사의 나이 50세에 오조회하의 700여대중의 상좌가 되어 오조의 인정을 받았다. 상원2년(675) 10월 오조가 입적하자 형주 강릉(호북성)의 당양산으로 이주하다. 구시년중에 측천무후와 중종‧예종의 예우를 받아 삼제의 국사가 되었고, 중서령 장설은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측천무후는 당양산에 도문사를 세워 사로 하여금 불법을 선양하게 하다. 그의 가풍은 이념, 오방편을 중시하여 남종신회의 공격을 받았으며 혜.. 2012. 3. 25.
용문석굴(龍門石窟, Lung-men caves) 용문석굴(龍門石窟, Lung-men caves) 돈황 막고굴, 대동(大同) 운강석굴(雲崗石窟)과 더불어 중국 삼대석굴로 유명한 세계적 불교유산이다.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494년에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용문시대가 열린다. 이미 대동시대에 탁월한 석굴조각 기법을 자랑했던 북조 문화의 정수가 선보이는 것이다. 운강이 거친 사암(砂巖)인데 비해 용문은 치밀한 감람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때부터 당(唐)대까지 7왕조 400여년에 걸친 대역사의 결과가 오늘의 용문석굴이다. 1킬로에 걸쳐 20,00여개 이상의 석굴에 10만개가 넘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것이다. 용문시대의 특징은 고양동(古陽洞) 삼존(三尊)과 협사(脇士)에서 보는 것처럼 얼굴이 길고 미끈하다. 목도 길며 화사한 편이다. 장식도 섬.. 2011. 5. 26.
경등유 경등유 현수대사가 측천무후에게 중중무진의 연기를 설하기 위하여 10개의 거울을 8우상하에 놓고, 중앙에 불상을 놓고 등불을 켜서 그것을 비추고, 설명한 일을 가리킨다. 각 거울에 상이 나타나 그것이 서로 마주 비추었다. 2011. 5. 3.
대주간정중경목록 (大周刊定衆目錄) 대주간정중경목록 (大周刊定衆目錄) 측천 무후의 명을 받고 많은 경전의 제목을 기록한 책. 201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