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태조이성계2

완주 위봉사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21 ☎ 063-243-7657 관련글 : 완주 위봉사 청정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추줄산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에 서암대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이 설화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1868년 조선 세조때 포련선사가 쓴 ‘위봉사극락전중수기(圍鳳寺極樂殿重修記)’에 따르면 신라 말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 산꼭대기에 올라가 장대봉에서 보니 남쪽으로 봉황 3마리가 산을 감싸고 있어 이를 보고 이곳에 절을 짓고 위봉사(圍鳳寺)라고 이름지었다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고려 공민왕 8년(1358) 나옹화상이 절을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2년(1466) 석잠대사가 수리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 2011. 7. 2.
수륙재(水陸齋) 수륙재(水陸齋) 수륙회, 수륙무차평등재의, 국행수륙대재 라고도 하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고독한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불법(佛法)을 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 중국의 양무제(梁武帝)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의식문을 만들어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齋)를 베풀었다. 송대에는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을 지어 널리 보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1년 갈양사(葛陽寺)에서 수륙도량을 연 것이 효시다. 조선조에선 억불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맥을 이어갔다.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國行) 수륙재를 여는 사찰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수륙재가 국행(國行)으로 치러지는데 대해 유생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다가 중종대에 이르러서야 국행시연이 금지된다. 이 정도로 조선 초.. 2011.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