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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소3

화엄종 화엄종 교종의 대표주자라 할수 있는 종파. 문무왕때 의상(義湘)이 부석사(浮石寺)를 중심으로 창종했다. 물론 화엄종은 의상이전에 이미 신라에 들어와 있었다. 자장과 원효가 화엄사상을 신라에 전파했던 것이다. 실제로 원효는 화엄경종요(華嚴經宗要)와 화엄경소(華嚴經疏)를 펴냈다. 그러나 체계적인 화엄교학이 뿌리를 내린 것은 의상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의상을 해동화엄초조(海東華嚴初祖)라고 한다. 의상은 상문십덕(湘門十德)이란 화려한 제자군단을 두었다. 이러한 의상의 노력으로 화엄종은 화엄십찰(華嚴十刹)이란 메이저 사찰을 거느릴수 있었다. 그러다가 신라말에 이르러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분열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관혜(觀惠)와 희랑(希朗) 두 법사가 견훤과 왕건의 정치적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 2011. 10. 8.
원효(元曉/617~686.3.30) 원효(元曉/617~686.3.30) 신라 때의 승려.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신당(新幢). 설총(薛聰)의 아버지. 압량(押梁:慶山郡) 출생. 648년(진덕여왕 2)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가산을 불문에 희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자기가 태어난 집터에는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650년(진덕여왕 4)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중도에 고구려 순찰대에 붙잡혀 실패하였다. 661년 의상과 다시 유학길을 떠나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한 고총(古塚)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날이 새어서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대오(大悟)하고 그냥 돌아.. 2010. 9. 11.
화엄종(華嚴宗) 화엄종(華嚴宗) 중국 당(唐)나라 때에 성립된 불교의 한 종파.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며,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중국 불교의 쌍벽을 이룬다. 동진(東晉) 말 북인도 출생의 승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화엄경》을 한역한 이래《화엄경》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특히 511년 인도의 논사(論師) 세친(世親)의 저서《십지경론(十地經論)》을 모두 완역한 것을 계기로 지론종(地論宗)이 성립되었는데, 이는 화엄종 성립의 학문적 기초가 되었다. 한편《화엄경》을 사경(寫經)․독송(讀誦)하는 화엄 신앙과, 이 신앙에 근거하는 신앙 단체인 화엄재회(華嚴齋會)도 발생하여 화엄종 성립의 기반이 성숙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두순(杜順)은 종래의 화엄에 대한 교학적 연구보다 실천적․신앙적 입장을 선양하여 화엄종의 제1조가.. 2010.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