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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조주 (趙州) 조주 (趙州) 남천보원의 제자. 종심(778~897)을 가리킴. 산동성 조주 사람. 성은 학씨. 조주의 관음원에 주하였으므로 조주라고 한다. 어려서 조주의 호통원에 출가하였으나 계를 받지 않고 바로 지양으로 달려가 남천선사를 참알하고 언하에 문득 심법을 깨쳤다.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 南泉普願의 제자. 당나라 조주사람, 성은 학(郝)씨. 어려서 조주(曹州)의 호통원(扈通院)으로 출가하고 남천(南泉)에게 가니 남전이 마침 누워 있다가, ‘어느 곳에서 왔는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읍니다’ ‘서상(瑞像)을 보았는가’ ‘서상(瑞像)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를 보았읍니다’ ‘네가 유주사미(有主沙彌)냐 무주사미냐’ ‘유주사미입니다’ ‘주(主)가 어디 있느냐’ 조주,‘동짓달이 매우 춥사온데 체후만복.. 2010. 9. 18.
자운식참주 (慈雲式懺主) 자운식참주 (慈雲式懺主) 963(乾德 1)~1032(明道 1) 송(宋)나라 때 승려. 자운은 송나라 진종이 내려준 호. 식은 준식이니 그의 이름. 참주(또는 자운참주)는 사가 항주 천축 영산사에 금광명참당을 세우고 「금광명참의」를 지어 그 법을 행하였으므로 후세에 참주라 일컬음. 자는 지백. 천태 영해 사람. 처음에 선을 배우면서 계률도 겸하여 닦았다. 뒤에 천태산 국청사의 보현보살상 앞에서 한 손가락을 태워 천태교학 연구를 맹세하였고 송나라 함평 3(1000)년에 크게 가물매 비를 빌어 영험이 있었다. 그 뒤에 천태산의 서쪽에 암자를 짓고 대중과 함께 염불삼매를 닦고 1024년 조정에 주청하여 천태의 교문을 대장경에 넣게 하였다. 송나라 명도 1(1032)년 10월 8일에 입적하다. 2010. 9. 18.
작소 도림(鵲巢 道林 741~824) 작소 도림(鵲巢 道林 741~824) 작소(鵲巢)는 호(號). 또는 조과라고도 함. 도림은 이름. 성은 반씨. 어릴 때 이름은 향광. 절강성 항주부 부양현 사람. 九세에 출가. 21세에 형주의 과원사에서 구족계를 받다. 장안 서명사의 복례에게 화엄경과 기신론을 배우면서 선을 닦고 경산도흠선사를 뵙고 심요를 깨닫다. 남쪽에 있는 전당 고산의 영복사에 가는 도중 서호의 태망산에 나뭇가지가 무성하여 일산과 같이 된 장송이 있음을 보고 항상 그 위에 올라가 있었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조과선사(鳥窠禪師) 또는 조과(鵲巢和尙)이라고 불렀다. 원화년중(806~820)에 백거이(白居易)가 항주태수(杭州太守)로 있을 때 선사를 찾아가 자주 도를 묻고 존경하였음. 당 장경 4(824)년 2월 10일 세수 84에 가부를 하고.. 2010. 9. 18.
무착보살(無著 ?~?) 무착보살(無著 ?~?)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인도의 스님. 산스크리트명은 아산가(Asa․nga). 간다라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일파에 속했다가 후에 중인도의 야요디야에 이르러 대승불교로 전향하였다. 전하는바에 의하면 미륵보살에게서 유식(唯識)의 논전(論典)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가 자신보다 앞선 유가사(瑜伽師)들로부터 이 계통의 사상을 계승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을 기반으로 종래의 부파적 해석학도 답습하면서 인간의 심층의식에 기초한 언어활동을 분석․조직한 점에서 인도불교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요 저작에 《섭대승론(攝大乘論)》《아비달마집론(阿毘達磨集論)》등이 있다. 원래 삼형제인데 첫째가 무착이고 둘째가 세친(世親)이다. 바로 세친은 유명한 불.. 2010. 9. 18.
경흥(憬興/?~?) 경흥(憬興/?~?) 신라의 고승. 성(性) 수(水). 웅천주(熊川州 : 현 公州) 출생. 18세에 승려가 되어 경(經)․논(論)․율(律) 삼장(三藏)에 통달하였다. 681년 문무왕(文武王)의 유언에 따라 신문왕(神文王)에 의해 국로(國老)가 되어, 삼랑사(三郞寺)에서 저술에 정열을 쏟으며 법상종(法相宗)을 발전시켰다. 저서에《열반경소(涅槃經疏)》(14권)《법화경소(法華經疏)》(l6권)《금광명경술찬(金光明經述贊)》(7권)《미륵경술찬(彌勒經述贊)》(3권)《약왕경소(藥王經疏)》(1권)《사분율갈마기(四分律磨記)》(1권)《유가론소(瑜伽論疏)》(10권)《유가기(瑜伽記)》(36권)《기신론문답(起信論問答)》《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아미타경술찬(阿彌陀經述贊)》《무량수경술찬(無量壽經述贊)》등이 있다 2010. 9. 16.
남악회양 (南嶽懷讓 677~744) 남악회양 (南嶽懷讓 677~744)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성은 두씨. 산서성 금州 안강 사람. 이름은 회양. 남악은 호. 15세 때 후베이성(湖北省) 징저우(荊州)에 있는 옥천사(玉泉寺)의 홍경율사(弘景律師)를 따라 출가하여 하오산(蒿山)의 혜안(慧安)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후에 동학인 탄연의 권고로 숭산적안을 참알한 뒤 조계산에 들어가 선종 6조인 혜능 밑에서 8년 동안 수도하여 마침내 대오하였다. 당 천보 3(744)년 8월 11일 나이 68세로 입적함. 당 경종이 대혜선사의 시호를 내려주다. (전등록 5․전법정종기 7) 714년 후난성(湖南省) 남악(南岳)의 반야사(般若寺) 관음당으로 들어가 30년 동안 크게 교화(敎化)를 펴며 독자적인 선풍(禪風)을 떨쳤다고 하여 이 법계(法系)를 남악.. 2010. 9. 14.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 사천성 순경부 서충현 사람. 규봉은 호. 종밀은 이름. 성은 하씨. 선사의 휘는 종밀로서 과주 서충의 하씨 아들이며 도원화상의 법을 이었다. 젊어서 유교를 배우고 28세에 과거보러 가다가 수주도원을 만나 출가하여 선을 닦음. 뒤에 징관의 화엄경소역(華嚴經疏釋)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되어 화엄경(華嚴經)을 연구하여 선과 교의 일치를 주창했다. 당 회창 1(841)년 1월 6일 흥복선원에서 나이 62세로 좌화하니 당 선종이 정혜선사라 시호를 내려줌. 저서에는「원각경소」육권,「행원품수소의기」육권,「원인론」일권 등 이백여권이 있다. 2010. 9. 14.
대매(大梅 ?~808) 대매(大梅 ?~808) 성은 정씨. 이름은 법상. 대매는 호. 또는 매자. 마조도일의 제자. 처음 마조를 참알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佛입니까.」 馬祖「곧 마음이 부처다.」한데서 크게 깨침. 당 덕종 때 대매산에 호성사를 짓고 크게 종풍을 떨치다. 당 원화 삼3808)년 6월 9일 나이 88세로 입적함. [전등록 7] 2010. 9. 14.
단하(丹霞) 단하(丹霞) 당나라 승려 천연(730~824)의 호. 등주 사람. 시호는 지통. 탑호는 묘각. 석두의 법을 잇고 뒤에 단하산에 주하면서 크게 화문을 펴고 다시 남으로 양양을 유행하며 방대사와 교우함. 장경 4(824)년 6월에 대립책장하고 86세에 입적. 2010. 9. 14.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사천성 성도부 십방 사람. 姓은 馬氏. 이름은 道一. 字는 江西. 馬祖는 號. 남악회양(南嶽懷讓)의 제자. 어려서 자주의 당화상에게 낙발하고 투주의 원율사에게 나아가 구계를 받다. 뒤에 남악(南嶽)을 만나 서래밀지(西來密旨)를 오득(悟得)하고 이로부터 두각을 드러내 강서 마조산에 법당을 건립하고 성대히 종풍을 선양하여 당시 사람들이 강서의 마조와 호남의 석두를 병칭하여 선계의 쌍벽이라 불렀다. 당 대력년중(766~778)에 남강의 공공산과 강서성 남창부 개원사에서 교화를 펴니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9명이나 되었다. 그 중 백장회해(百丈懷海)․서당지장(西堂智藏)․남천보원(南泉普願)․대매법상(大梅法常) 등이 특히 뛰어났다. 당 정원 4(788)년 2월 4일 건창의 석문.. 201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