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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아호대의 (735-818) 아호대의 (735-818) 남악하 3세. 마조의 법을 이었다. 형주(衡州)수 강(須江)에서 출생. 속성은 서(徐)씨다. 당나라 현종 친림하 제법사와의 문답일단. 법사 묻기를, "어떠한 것이 선(禪)입니까?" 사(師)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치니, 법사 알아듣지 못하니, 현종"법사는 그 허구 많은 경을 강하면서 다만 이 일점도 모르시오?" 사 이어 현종에게 말하기를 "순종(順宗)이 시리선사에게 묻기를 "대지중생이 어떻게 견성성불 하겠읍니까?"하니 시리 선사는 "불성은 물속에 있는 달그림자와 같아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 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불성은 봄이 없는 마음으로 가히 보는 것입니다." 현종 "어떠한 것이 불성입니까?"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를 여의지 않았읍니다."하였다. 현종 원.. 2011. 1. 24.
달마(達磨): (?~528) 달마(達磨): (?~528) 범어로 . 선종의 중국 초조로 세존. 가섭.아란으로 전하여 내려오는 불조법통의 제28대 조사가 된다. 남인도 향지 국 제3왕자로 본명은 라 하였다. 존자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을 섬기다가 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 행하던 소승선관의 육종(六宗)을 굴복시켜 전인도에 그 이름을 떨치고 60여년 을 교화하였다. 가 법을 전할 때 "내가 죽은 후 67년이 되면 네가 동방으로 가서 대법을 선양하라. 부디 속히 가려고 서두르지를 마라. 남방에 는 유위공업(有爲功業)이나 좋아하고 불리(佛理)는 보지 못하니 그곳에는 머 물지 마라. 동토에는 보리를 이룰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하셨는데, 사 조카 이견왕(異見王)을 교화하고는 마침내 바다길로 중국을 향하여 3.. 2011. 1. 23.
황벽(黃檗) (?~850) 황벽(黃檗)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곳을 유력하였는 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 그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니 말하기를"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 )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뿐이지 딴 것이 있읍니까?"하니 화상이 불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하겠느냐?"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말씀이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 2011. 1. 23.
우바리 (優婆離) 우바리 (優婆離) 부처님 10대 제자 중 계율을 가장 잘 지킨 분. 지계제일(持戒第一)로 이름이 높으며 제일결집(第一結集) 때 율(律)을 송출(誦出)함. 우바리는 십대제자중 지계제일(持戒第一)로 손꼽힌다. 계율을 지키는데 최고라는 의미다. 우바리는 본래 인도의 4성계급중 가장 비천한 수드라 출신이다. 직업도 석가족의 궁중 이발사였다고 한다. 범어로는 우팔리다. 그러나 인생에 일대변화가 몰아 닥쳤다. 그가 모시고 있던 석가족의 왕자들이 출가한 것이다. 그때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하는 왕자들을 보고 우바리는 크게 깨달아 자신도 출가를 단행했다. 그러자 왕자들은 우바리를 먼저 득도케 해달라고 간청한다. 불교에서는 사성(四姓)의 차별이 없고 오로지 득도의 순서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경이로운 불교의 저력이 아닐수.. 2010. 12. 31.
구마라습 (鳩摩羅什) 구마라습 (鳩摩羅什) 인도의 학승(學僧). 인도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활동한 스님(344~413)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인도변방을 칠 때 장안(長安)으로 잡혀와 많은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함(344-413). 구마라집파․구마라기파의 약칭. 줄여서 라집. 번역하여 壽童이라 함. 什의 父는 天竺 사람인데 출가하여 구자국에 들어가 국왕의 매와 결혼, 什을 낳았다. 뒤에 什의 어머니가 출가하여 도과를 얻다. 什은 나이 7세에 어머니를 따라서 출가하여 서역을 유력하며 군적을 총람하였고 대승에 가장 밝았다. 진王 부견이 건원 10(383)년에 여광에게 구자국을 치게 하여 什을 데리고 량주로 돌아왔으나 부견이 패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 뒤 후한 요흥이 량을 정벌하여 什이 비로소 장안에 .. 2010. 12. 27.
운법(雲法) : 1088(元祐 2)~1158(紹興 28) 운법(雲法) : 1088(元祐 2)~1158(紹興 28). 중국 장주 사람. 속성은 과씨. 자는 천서. 호는 무기자. 9세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통조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천축사의 민법사에게 화엄경을 배우다. 정화 7(1117)년 송강의 대각사에 주하면서 법화경 등을 8년 동안 강하니 제가 듣고 자의와 보윤대사의 호를 내려줌. 紹興 28(1158)년 9월 단좌이화하다. 저서에 「식음집」·「번역명의집」·「금강경」과「심경소초」가 전한다. 2010. 9. 27.
설두명각 (雪竇明覺) 설두명각 (雪竇明覺) 지문광조의 제자 중현(98?~1052?)를 가리킴. 설두는 지명. 명각은 시호. 자는 은지. 성은 이씨. 수주 사람. 어려서 보안원 인선상인에게 출가하여 구계를 받고 뒤에 남유하여 지문광조의 법을 잇다. 얼마 후에 취미봉에 주하다가 다시 설두산으로 옮겨 크게 문풍을 떨치다. 저서에 「설두송고」「조영집」「폭천집」등이 전한다. 2010. 9. 24.
찬영 (贊寧) 918(貞明 7)~999(咸平 2) 찬영 (贊寧) 918(貞明 7)~999(咸平 2) 중국 송나라 때 승려. 성은 고씨. 절강성 덕청 사람. 그의 선조는 발해 사람이다. 어려서 그 고을의 상부사에 출가. 뒤에 항주 영은사에 주하면서 삼장을 박섭하였는데 특히 남산율에 정통하여 그때 사람들이 율호라 불렸다. 세전에도 널리 통하여 문장에도 능했다. 오월 충의왕이 양절승통으로 삼고 명의종문이라 호하였으며 송나라 태평흥국 3(978)년에 태종이 통혜대사의 호를 내려 주었다. 태평흥국 7(982)년에 칙명으로 절동에 돌아가 「송고승전」을 편찬하기 시작하여 단홍 1(988)년에 완성했다. 순화 원(990)년 조칙을 받들어「취영성현록」100권을 짓다. 함평 원(998)년에 우가승록에 뽑히고 동2년에 좌가승록이 되다. 동2(999)年에 82세로 입적함. .. 2010. 9. 24.
대지조(大智照 1048~1116) 대지조(大智照 1048~1116) 중국 여항 전당 사람. 성은 당씨. 자는 담연. 호는 안인자. 대지는 시호. 조는 원조이니 그 이름. 전당의 상부사 혜감율사에게 출가, 율을 배우고 신오처겸을 좇아 천태의 교학을 익힘. 원풍 원(1018)년 3월에 도속 천여인과 함께 뇌봉에 이르러 혜재에게 구족계를 받다. 항상 베옷을 입고 석장을 끌고 발우를 들고 시가에서 걸식, 부처님의 금계를 엄수하였다. 만년에 영지의 숭복사로 옮겨 삼십년을 거하니 세인들의 영지존자라 불렸다. 사의 교를 받은 도속이 항상 삼백인에 달하였다. 후에 중병을 얻어 천태의 십의론을 읽고는 정토를 독실히 믿었다. 송 정화 6(1116)년 9월 1일에 나이 69세로 좌화하다. 저서에 「사분률행사초자지기」42권,「관무량경소」3권, 「지원집」2권 .. 2010. 9. 24.
담무갈(曇無竭) 담무갈(曇無竭) 무갈(無竭). 비구(比丘)의 이름. 번역하여 법상(法上)․법기(法起)라 함. 중향성(衆香城)의 왕이 되어 항상 반야파라밀다를 설하는데 상제보살(常啼菩薩)이 여기에 와서 들었다고 함. 2010.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