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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9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한국 말기의 스님. 처음이름은 동욱(東旭) 속성은 여산 송씨. 전주에서 태어나 9세에 광주 청계사 계허스님에게 출가하고 동학사 만화스님에게 경학을 배우다. 23세에 동학사에서 개강. 31세에 여역(癘疫)이 치성한 마을을 지나가다 생사의 박두함을 깨닫고 학중(學衆)들을 헤쳐 보내고 문을 닫고 좌선하여 묘지(妙旨)를 크게 깨닫다. 32세에 홍주 천장사에서 용암(龍巖)스님의 법을 잇고 그 후부터 도처에서 선풍(禪風)을 드날리면서 해인사, 범어사, 마하연, 석왕사 등 여러 절을 돌아다니고 56세에 갑산 강계 등지에서 자취를 감추어 장발유관(長髮儒冠)으로 바라문 노릇을 하면서 난주(蘭洲)라 이름하다가 갑산 웅이방에서 입적. 나이 64세 법랍 56세 문하에 근세의 선사로 이름이.. 2013. 3. 11.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 송대 조동종, 습주(隰州 산서성)사람 성은 李씨, 이름은 정각(正覺) 11세에 정명사(淨明寺) 본종(本宗)에게 체발(剃髮)하고 14세에 진주 자운사(晋州 慈雲寺 산서성 임분) 지경(智瓊)에게 수수(受具)하다. 18세에 제방을 유력(遊歷하)다가 단하산(丹霞山 하남성) 자순(子淳)의 법을 받고(1124), 건염 원년(建炎 1127)에 서주 소평사(舒州 泰平寺)에 주하고 강주(江州) 원통(圓通), 장로(長蘆)로 이주하다. 뒤에 천동산(天童山 절강성 영파부근)에 주하며 개법하니(1129) 따르는 제자가 항상 1,200인이 되었으며 이곳에 약 30년 머물면서 가람을 일신하고 학덕을 베푸니 ‘천동중흥의 조(天童中興의 祖)’라 칭하다. 소흥(紹興) 27년 10월 나이 67세로 입.. 2013. 3. 3.
야사(耶舍) 야사(耶舍) 야수라, 야사타라 음역. 명문(名聞), 명칭(名稱)이라 번역. 중인도 바라내국 장자 선각의 아들. 인생의 무상함을 통감하고 염세하는 마음을 내어 교화를 받고 불제자가 되다. 그의 부모와 아내는 야사의 출가를 술피 여겨 세존이 있는 데 까지 따라 왔다가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불문에 귀의. 부처님 성도하신후 첫 우바새, 우바이가 되다. 2013. 2. 12.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휴정은 법명, 성은 崔씨 완산사람.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 9,10세에 양친을 잃고 과거에 낙방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경전을 공부하고는 숭인(崇仁)에게 출가하다. 21세에 영관(靈觀)에게 인가를 받고 만행하다가, 1589년 정여립의 옥사에 무업(無業)의 무고(誣告)로 체포되었으나 선조(宣祖)가 오히려 상을 내리다. 1592년 의주(義州)에서 선조(宣祖)의 명으로 도총섭(都總攝)이 되어 의승(義僧) 5천을 인솔하여 왜란(倭亂)에 대처하다. 후에 금강산‧묘향산‧두륜산에서 가풍을 선양하다.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 뒤에 입적하다.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 삼가귀감(三家龜鑑) 청허당집(淸虛堂集 8권) 선교석(禪敎釋) 선교결.. 2013. 1. 30.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 중국 당나라 스님, 육조혜능의 제자, 온주부 영가현사람. 성은 대(戴)씨 이름은 현각, 영가는 호, 별호는 일숙각(一宿覺). 8세에 출가하여 장경(藏經)을 널리 보고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하다. 뒤에 유마경(維摩經)을 보다가 깨친 바가 있었고, 조계에 가서 육조를 뵙고 깨달아 인가받고는 하룻밤을 자고 떠나니 시인(時人)이 ‘일숙각(一宿覺)’이라 부르다. 곧 돌아가서 고향의 용흥사(龍興寺)에 주하니 학자가 날로 늘어나다. 당 선천(唐 先天)2년 10월 앉아서 입적하니 나이 49세. 당 예종이 무상대사(無相大師)라 시호하다.(전등록5, 송고승전8, 회원2, 통기10, 통재16) 저서:[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1권] [증도가 證道歌] [관심십문觀心十門] 등. 관련글 :.. 2013. 1. 20.
장경회휘(章敬懷暉,754-815) 장경회휘(章敬懷暉,754-815) 唐代(당대) 南岳下(남악하_, 泉州(천주 복건성) 同安縣(동안현) 사람, 성은 謝(사)씨. 貞元初(정원초)에 洪州(홍주) 馬祖(마조)를 배알하고 心要(심요)를 얻은 후, 濟州(제주 산동성) 靈巖寺(영암사)에 寓居(우거)하다가 定州(정주 하북성) 百巖寺(백암사)에 주하며 禪法(선법)을 폈다. 元和3년(원화 3년 808) 勅令(칙령)에 의해 京兆府(경조부 장안) 章敬寺(장경사)의 毘盧遮那院(비로자나원)에 주하다가 元和(원화)10년 12월 62세로 示寂(시적). 시호는 大覺禪師(대각선사), 賈島(가도)가 碑文(비문)을 權德輿(권덕여)가 碑銘(비명)을 지었다. (全唐文(전당문)501‧唐故章敬寺百巖大師碑銘幷序, 조당집14, 송고승전10, 전등록7) 관련글 : 마조도일(馬祖道一 7.. 2012. 12. 15.
해안봉수(1901-1974) 해안스님(1901-1974) 1901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해안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두루 익혀 뛰어난 조예를 보였다. 붓 장수로부터 전해들은 한학자 고찬(高讚)선생을 찾아 변산의 내소사에 왔다가 만허 화상을 은사로 불연을 맺게 된 해안 스님은 3년 후 백양사에서 만암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치열한 구도의 길로 접어든다. 1918년 성도절(成道節), 백양사 학림에서 학명 선사로부터 받은 ‘은산철벽을 뚫으라’는 화두를 들고 7일 용맹정진에 몰두하던 해안 스님은 불연을 맺은지 4년 만에 혜안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해안 스님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동국대의 전신인 불교 중앙 학림에서 현대적인 불교교육을 받았고 만주로 건너가 중국의 선풍을 경험하는 등 정진을 거듭했다. 해안 스님은 자신의.. 2012. 10. 12.
철감 도윤(澈鑒道允, 798∼868) 철감 도윤(澈鑒道允, 798∼868) 신라말 사자산문의 개산조이다. 속성은 박씨로서 어머니가 신이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고 한다. 18세에 출가하여 황해도 귀신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했으나 원돈(圓頓)을 가르치는 화엄이 심인(心印)을 전하는 선(禪)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825년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남전 보원(南泉普願)을 찾아가니, 남전 보원 스님은 한 눈에 도윤 스님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중국의 법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했다 한다. 847년(문성왕 8)에 범일(梵日) 스님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물면서 후학을 지도했는데, 경문왕도 그 때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 뒤 다시 쌍봉사로 가서 종풍(宗風)을 떨치.. 2012. 10. 7.
석전 영호당 정호 (박한영) 석전 영호당 정호 (박한영) 1870(고종 7)∼1948. 근대의 승려 성은 박씨(朴氏). 자는 한영(漢永), 호는 영호(映湖) 또는 석전(石顚). 전라북도 전주 출신.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듣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동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에게 4교(四敎)를 배우고, 선암사(仙巖寺)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1896년 구암사에서 개강한 뒤 해인사ㆍ법주사ㆍ백양사ㆍ화엄사ㆍ범어사 등지에서 불경을 강의하였다. 1908년 쇠퇴한 불교를 혁신하려는 뜻을 품고 교단(敎團)의 유신에 힘을 기울였으며, 1911년 해.. 2012. 10. 5.
순도(順道) 순도(順道)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해 온 스님. 본래 천축 사람이라고도 하며 또 진나라 사람, 혹은 위나라 사람이라고도 함 372년(고구려 소수림왕2년) 6월에 전진(前秦)나라의 왕 부견의 사신과 함께 불상, 경전을 가지고 오다. 375년 봄에 성문사(省門寺)를 지어 있게 하다. 2012.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