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허용하(耘虛龍夏,1892-1980)
운허용하(耘虛龍夏,1892-1980) 근대 대강백, 대장경 한글화의 주역. 평북 정주사람, 성은 李씨 속명은 학수(學洙), 춘원(春園) 이광수의 재종제(再從弟). 어려서 향리에서 한학과 현대학문을 수업하고, 1912년 한일합방에 항거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1921년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다가 강원도 희양군 봉일사(鳳逸寺)로 피신하였다가 경송(慶松 월초:1858-1934,의 제자)에게 득도하다. 그뒤 범어사, 개운사 등지에서 8년간 교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합류하여 교육사업에 진력하다. 1932년 다시 귀국, 봉선사 홍법강원(弘法講院)에서 36년부터 강석(講席)에 앉다. 1946년 광동학교(廣東學校)를 개설하고 한국전쟁이후 범어사, 통도사, 해인사 등에서 강주(講..
2011. 11. 20.
남천보원(南泉普願,748-834)
남천보원(南泉普願,748-834) 당대 남악하, 정주(하남성) 신정사람 성은 왕씨. 지덕2년(757) 대외산 대혜에게 출가하고, 대력12년(777,30세) 숭악에 가서 수구하다. 처음에 성상, 삼론 등을 공부하다가 현기는 경론의 밖에 있다는 의지를 생각하고, 마조문하에 참예하여 법을 잇다. 정원11년(795) 지양(안휘성)의 남천산에 선원을 짓고 스스로 ‘왕로사’라 칭하며 30년간 하산하지 않고 논밭을 일구며 주하니 학인이 항상 모여 성황을 이루다. 태화초년에 前太守 육긍의 귀의를 받고, 문하에 조주종심, 장사경잠, 자호이종 등의 뛰어난 제자를 두다. 태화8년 12월 87세로 시적. 사는 특히 학인을 접화하는 방편어가 뛰어나 ‘남천참묘, 남천수고牛, 남천목단’등의 공안이 있다.(송고승전11, 조당집16,..
2011. 10. 27.
덕진(德眞 ?~1888)
덕진(德眞 ?~1888) 조선시대 스님. 호 : 허주(虛舟) 조계산에서 출가. 학문을 성취, 도를 통하다. 사람을 피하여 송광, 선암, 동리, 칠불, 불일, 능가, 백운, 두륜, 달마, 가지, 백양 등 명찰에서 지내다 다시 서울로 갔다가 대원군의 청으로 철원 보개산 초암과 지장암에서 기도 불사를 행하다. 가는 곳마다 4부대중이 운집, 의식이 항상 밀리다. 근세에 이름난 선객.
2011. 10. 10.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唐代스님, 월주제기사람, 성은 염씨. 어려서 육조혜능(六祖慧能)을 따라 배우고 그의 법을 잇다. 六祖 입적후에 여러 산에 두루 住하였는데 五嶺‧羅浮山, 四明‧天目山을 거쳐서 南陽의 白崖山 黨子谷에 들어가 40여년을 山門 밖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上元2년(761) 숙종이 그의 名聲을 듣고 詔勅을 내려 서울로 불러 스승의 禮로 맞게 하다. 玄宗,肅宗,代宗의 두터운 歸依를 받았으나 항상 淡泊한 本性 그대로 天眞自然을 즐기었다. 항상 南岳慧思의 宗風을 사모하고, 朝廷에 奏請하여 均州 武當山에 太一 延昌寺를, 黨子谷에 香嚴 長壽寺를 창건하고 大藏經 一部를 모시었다. 혜충은 行思, 懷讓, 神會, 玄覺 등과 함께 慧能門下의 五大宗匠으로 그의 禪風은 특히 달랐는데 당시 敎界에 光彩를 발하..
2011. 10. 9.
남악회양(南岳懷讓,677-744)
남악회양(南岳懷讓,677-744) 당대스님 육조의 적자, 금주안강(섬서성 한음현치)사람 성은 두(杜)씨, 휘는 회양 시호는 대혜大慧 탑호는 최승륜지탑(最勝輪之塔). 15세에 형주의 옥천사 홍경율사에게 중이 되고 동학인 탄연의 권고로 숭산혜안을 만난 뒤 혜능에게 참예하여 六祖云,‘從什麽處來’ 師云,‘從嵩山安國師處來’ 조운,‘是什麽物恁麽來’ 師罔措 於是執侍八年 方省前話 乃告師云,‘懷讓會得當初來時 和尙接某甲 是什麽物恁麽來’ 조운,‘儞作麽生會’ 사운,‘說似一物卽不中’ 조운,‘還假修證否’ 사운,‘修證不無 染汚不得’ 조운,‘祗此不染汚 是諸佛之所護念 汝亦如是 吾亦如是 乃至西天諸祖亦復如是’(전등록5‧南岳讓章) 심인(心印)을 깨닫고 법을 잇다. 713년 남악 반야사 관음대에서 30년동안 있으면서 선풍을 선양하다. 당천보..
2011.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