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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춘성(春城, 189~1977) 춘성(春城, 189~1977) 춘성스님은 1891년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창림(昌林), 본관은 평창(平昌), 성(姓)은 이(李)씨, 법명은 춘성(春城), 법호 또한 춘성(春性)이다. 태몽에 하늘에서 동자가 오색구름을 타고 어머니 품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어린 시절 영민함이 유난히 남달랐다고 한다.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신흥사에 가서 대웅전 부처님을 뵙고 난 후 출가의 뚯을 부모님께 고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3세에 백담사로 출가하여 만해 한용운스님 휘하로 들어가 머리를 깍게 되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백담사에서 만해스님에게서 수학하였는데 스님은 만해스님의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다. 20세에 스님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동선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25세에는 평안.. 2012. 4. 28.
앙굴리마라 앙굴리마라 살인을 일삼던 이교도 였으나 후에 반성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앙굴리는 손가락. 말라는 목걸이란 의미로서 사람들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하고 다녀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2012. 4. 17.
옥천신수(玉泉神秀, -706) 옥천신수(玉泉神秀, -706) 당대 오조홍인의 제자, 개봉(하남성) 위씨현사람 성은 李씨. 신장팔척 방미수목하여 위풍이 있었다. 장설의 비문에 의하면 유시에 경사를 배워 박종다문하였고 로장과 삼장에 두루 밝았다 한다. 무덕8년(625) 낙양 천궁사로 출가하고 기주 동산사의 홍인에게 참예하여 수시하였다. 사의 나이 50세에 오조회하의 700여대중의 상좌가 되어 오조의 인정을 받았다. 상원2년(675) 10월 오조가 입적하자 형주 강릉(호북성)의 당양산으로 이주하다. 구시년중에 측천무후와 중종‧예종의 예우를 받아 삼제의 국사가 되었고, 중서령 장설은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측천무후는 당양산에 도문사를 세워 사로 하여금 불법을 선양하게 하다. 그의 가풍은 이념, 오방편을 중시하여 남종신회의 공격을 받았으며 혜.. 2012. 3. 25.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 송대(宋代) 임제종 양기파, 면주(綿州-호남성)사람, 성은 등(鄧)씨. 35세에 출가수구하여 성도에 가서 유식(唯識)을 배우다. 뒤에 남방으로 유행하여 원조종본(圓照宗本 : 1014-1099)을 참예하고 부산법원(浮山法遠)에 의지해 공부하다가, 후에 백운수단(白雲守端)의 제시를 받고 깨달음을 얻어 법을 잇다. 처음에는 安慶(안휘성) 四面山에 주하다가 만년에 기주(호북성) 五祖山에서 크게 종풍을 드날렸다. 제자에 원오극근(圓悟克勤), 태평혜근(太平慧懃), 불안청원(佛眼淸遠:三佛),개복도녕( 開福道寧), 대수원정(大隨元靜) 등의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다. 송 숭녕(宋 崇寧)3년 80여세로 입적하다.(속등록20, 선림승보전30, 회요16, 보등록8, 회원19) 저서:[오조법연선사.. 2012. 3. 17.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 )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 ) 스리랑카의 거사, 본명은 데이비드 헤와비타르네. 父는 무달리야르 다르마팔라이며 母는 말리카. 부모의 간절한 기도 속에 태어나 6세에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서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5계를 지켜나갔다. 1878년 콜롬보북부의 성공회부설 ‘성토마스 학교’에 입학했다. 매년 ‘베사크 祭日’마다 학교에서 도망나와 봉축행사에 참석하다. 그는 논쟁에 탁월한 재주를 가져서 독선에 찬 기독교도와 논쟁하기를 즐겼다. 더우기 코타헤나 사원의 ‘메게투바테 구나난다’스님에게 토론과 웅변을 배웠다. 그뒤 1875년 뉴욕에서 설립된 신지학회(러시아인 H.P.Blavatsky女史와 미국인 변호사 Henrys,Olcott대령, 변호사 W.Q.Judge가 창립한 과학과 종교, 철학을 통합한.. 2012. 3. 15.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 송대 임제종 양기파, 선주(안휘성) 영국현사람, 성은 奚씨 자는 담회 호는 묘희, 운문. 12세에 향교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세간공부가 어찌 출세간법 구하는 것만 같겠는가’하고 16세에 동산 혜운원에서 득도하고 자력으로 운문, 목주등의 설화를 숙독하였다. 출가초기에 조동문하에서 선지참구하고 정화원년(1111) 경산의 담당문준(진정극문의 법사)회하에서 공부하고 각범혜홍(1071-1128), 장상영 등을 배알하다. 담당의 유탁으로 환오극근에게 나아가 증오하다. 승상 여순도의 주청으로 ‘불일대사’의 호를 받고, 원오가 촉땅으로 돌아간 후 金과의 전란을 피하여 해혼(강서성)의 운문암에 이주하다. 사는 특히 조동의 묵조선에 대하여 ‘공안선’을 고취하며 경산의 능인선원에서 교화.. 2012. 3. 11.
고봉(古峰, 1890~1961) 고봉(古峰, 1890~1961) 법명이 景煜(경욱)으로 1890년 9월 29일 대구 외지동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조선 세조시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인 박팽년의 후손으로 15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하였다고 한다. 1911년 9월 경북 상주 남장사에 입산 이해봉 선사를 은사로 득도하고, 1915년 4월 팔공산 파계사 선실에서 좌선 중 홀연히 오도견성하였다. 1922년에는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에서 송만공 대선사로부터 전법 입실 건당(建幢)하고, 이어 청풍납자(淸風衲子)로 운수행을 할 때 광복운동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납되어 1년 6개월간 고생을 하였다. 그 후 정혜사, 백운사, 서봉암 등의 조실로 지도 중에 숭산행원 선사를 법제자로 맞이하였다. 한국전쟁 때에는 공주 마곡사 은적암에서 선회를 열어 선지를 거양하시고.. 2012. 2. 25.
서산휴정(西山休靜,1520-1604) 서산휴정(西山休靜,1520-1604) 휴정은 법명, 성은 崔씨 완산사람.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 9,10세에 양친을 잃고 과거에 낙방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경전을 공부하고는 숭인(崇仁)에게 출가하다. 21세에 영관(靈觀)에게 인가를 받고 만행(萬行)하다가, 1589년 정여립의 옥사에 무업(無業)의 무고(誣告)로 체포되었으나 선조(宣祖)가 오히려 상을 내리다. 1592년 의주에서 선조의 명으로 도총섭(都總攝)이 되어 의승(義僧) 5천명을 인솔하여 왜란(倭亂)에 대처하다. 후에 금강산‧묘향산‧두륜산에서 가풍을 선양하다.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 뒤에 입적하다. 저서로는 선가귀감(禪家龜鑑) 삼가귀감(三家龜鑑) 청허당집(淸虛堂集 8권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2012. 2. 24.
보조지눌(普照知訥,1158-1210) 보조지눌(普照知訥,1158-1210) 고려대 보조국사(國師), 휘는 지눌(知訥) 불일은 시호(諡號), 아호는 목우자(牧牛子). 황해도 서흥사람 성은 鄭씨. 어려서 신병이 잦아 결국 아버지가 출가시킬 것을 발원기도하니 병이 낫다. 16세에 종휘(宗暉)에 출가하고 1182년 선과(禪科)에 합격하고 동료 수십인과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혼자 창평 청원사에서 ‘육조단경’을 보고 기쁨을 얻고 대장경을 열람, 특히 1185년 하가산보문사(경북예천)에서 이통현의 화엄론을 보고 원돈의 이치를 깨닫다. 1198년 도반 몇과 함께 지리산 상무주에서 수도하던 어느날 ‘대혜어록’에서 크게 깨달아 보살행을 지향하다. 1200년 송광산 길상사(지금의 순천 송광사)에 머무니 치백이 운집 총림을 이루다. .. 2012. 2. 20.
차닉(車匿) 차닉(車匿) 천탁가(闡鐸迦)라고도 음역. 싣달타 태자가 성을 넘어 고향의 첫길을 떠날때에 흰말 건척을 끌던 마부의 이름. 뒤에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나 말버릇이 나쁜 성미는 고치지 못하여 악구 차닉, 악성 차닉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실때에 아난에게 분부하여 묵빈법(默빈法)으로 대치하라고 한것은 이 차닉을 말한 것. 나중에는 드디어 과(果)를 증득하였다. 2012.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