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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진표 율사(眞表律師) 진표 율사(眞表律師) 관련사찰 : 금산사 진표율사는 불교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문화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사에 대한 기록은 극히 빈약하여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遣事)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뿐만 아니라「삼국유사」의 기록 가운데 진표율사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소상한 「진표전간(眞表傳簡)」과 「관동풍악발연수 석기(關東楓岳 淵數 石記)」의 기록이 차이가 있다. 금산사(金山寺)를 중창(重劍)하여 신라시대 오교구산문(五敎九山門)의 하나인 법상종(法相宗)을 창종(創宗)하여 중생교화에 크게 공헌했다. 백제 법왕(法王) 원년(元率) 창건(創建)될 당시만 하더라도 금산사는 아주 작은 사찰(寺刹)에 불과했다. 그런데 진표 율사가 금산사를 크게 짓.. 2012. 9. 22.
진묵일옥 진묵일옥 관련사찰 : 봉서사, 원등암, 일출암 조선 명종17년(1562)에 전북 김제군 만경면 불거촌(佛居村)에서 태어나서 1633년 봉서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곡차를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전해지며 아쉽게도 게송(偈頌)과 어머니 제문(祭文)외에 남겨진 저술이 없으나 전해오는 일화들을 통해 그 편린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던 스님이다. 진묵대사의 행장기는 정리된 것이 없고, 다만 초의(草衣)선사가 민간에 전승되어 오던 18가지의 이적을 기록해 놓은 가 있을 뿐이나 진묵대사의 부도가 남아있는 전주 일원의 봉서사, 원등암, 일출암 등과 부안 월명암, 김제 망해사 그리고 대둔산 태고사(太古寺)등 진묵대사가 주석하신 것으로 알려진 지역마다.. 2012. 9. 21.
진감국사 혜소 진감국사 혜소 관련사찰 : 봉서사, 익산 남원사 혜소선사의 시호(諡號)는 진감(眞鑑)이며 속성(俗姓)은 최씨로서 비교적 늦은 31세의 나이로 출가하였다. 804년(애장왕 5)에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창주(滄州)에서 신감대사 (神鑑大師)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부단한 정진과 수행을 계속하여 810년(헌덕왕 2) 당나라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혜소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으며 참선하고 실천적 선수행을 통해 독자적 선사상을 형성하였다. 830년(흥덕왕 5년) 선사는 귀국하여 국왕의 환대를 받으며 상주(尙州) 장백사(長栢寺)에 주석하였고, 이후 교세의 확장과 문도의 증가에 힘입어 지리산에 쌍계산문을 개창하고, 남종선의 소개와 확산을 위해 노력하였다. 선사는 우리나라 범.. 2012. 9. 20.
보조 체증 보조 체증 관련사찰 : 완주 송광사 수양산 백련사 창건 체징 [體澄, 804~880] 속성 김(金). 시호 보조(普照). 탑호 창성(彰聖). 웅진(熊津:公州) 출생. 어려서 출가하여 화산 권법사(花山勸法師)에게서 배웠다. 827년(흥덕왕 2) 가량협산(加良峽山) 보원사(普願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설악산(雪嶽山) 억성사(億聖寺)의 염거(廉居) 밑에서 선(禪)을 닦았다. 837년(희강왕 2) 정육(貞育)·허회(虛會) 등과 당나라에 가서 수도하고 840년(문성왕 2) 귀국, 무주(武州:光州) 황학난야(黃壑蘭若)에 있었다. 2012. 9. 19.
원명국사(圓明國師) 원명국사(圓明國師) 원명국사(圓明國師)는 1090년(선종7)에 숙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숙종이요, 어머니는 명의(明懿)태후 유씨이다. 그의 처음 이름은 징길인데, 예종 때에 송 나라와의 휘를 피하여 징엄이라고 그 휘를 바꾸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불교에 대한 특이한 소질이 있었다. 그리하여 1097년(숙종2)그의 나이 8세가 되던 해에 경남의 흥왕사에서 대각국사에게서 법을 받고, 다음 해에는 명?에서 삭발 을 하고, 불일사에서 계를 받았다. 이로부터 그는 학문에 더욱 열심히 매진하였다. 그리하 여 1102년(숙종7)에는 부왕 숙종에 의하여 동광전에 주석하였으며, 1105년(숙종10)에는 부 왕으로부터 승통의 법계와 복세라는 법호를 받게 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겨우 .. 2012. 9. 18.
벽암 각성 벽암 각성 관련사찰 : 완주 송광사 벽암 각성대사는 조선 중기 승려로 호는 벽암(碧巖), 속성은 김(金), 자는 징원(澄圓)이다. 보은(報恩) 출생 후 10세에 출가하여 화산(華山)의 중 설묵(雪默)에게 사사(師事), 1588년(선조 21) 승려가 되어 정(晶)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내전(內典)을 배웠다. 부휴(浮休)를 따라 속리산·가야산·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부휴와 함께 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612년(광해군 4)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이 되었고, 19년 경기도 광주(廣州) 청계사(淸溪寺)에서 왕을 모시고 설법했다. 24년(인조 2)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승군(僧軍)을 독려하여 3년.. 2012. 9. 17.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5)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5) 관련사찰 : 금산사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2대 중창주이다. 법속성이 이씨(李氏)이며, 1038년(정종 4) 7월 3일 개성의 남쪽 불령리에서 중서령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민(民)이고 자는 범위(範圍), 법명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해린(海麟) 국사의 제자가 되어 『금광명경』과 『유식론』 등을 배우면서 법상종을 익혀나갔다. 12세 때 부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061년(문종 15년) 왕륜사(王輪寺)에서 열린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서 대덕(大德)의 칭호를 받았으며, 1069년에 중대사(重大師), 1071년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2012. 9. 15.
뇌묵 처영 뇌묵 처영 대사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7년 간에 걸쳐 조선의 국토를 황폐화시켰다. 개국 이래 문관(文官)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정은 상대적으로 국방의 약화를 초래하였고, 마침내 일본의 침략에 무방비로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이 약탈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강인한 저항의식은 곳곳에서 의병의 봉기로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출가자인 스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산(西山) 대사와 사명(四溟大師) 대사 등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던 조선의 국운을 되돌려 놓은 위대한 분이었다. 왜군이 거침없이 한양까지 밀려오자 선조는 의주로 몸을 피하고, 이때 서산 대사는 전국의 승려에게 총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보냈다. 전라도에서는 금산사를 중심으로 1,000여 명의 승병이 집결하였고.. 2012. 9. 14.
벽송 지엄(1454~1534) 벽송 지엄(1454~1534) 벽송 지엄(碧松智嚴, 1454~1534) 스님은 조선시대 초기에 오랫동안 폐허가 되었던 벽송사를 중창하여 실질적 창건주로 알려진 고승이다. 속성은 송씨(宋氏).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복생(福生)이며, 어머니는 왕씨(王氏)다. 어려서부터 문무를 모두 좋아하였고, 1491년(성종 22) 여진족을 토벌할 때 도원수 허종(許琮)의 지휘 아래에서 종군하여 이마차(尼麻次)를 물리치고 크게 공을 세웠다. 그러나 마음을 닦지 않고 싸움터에 쫓아다니는 것이 헛된 이름만 숭상하는 것임을 깨닫고, 28세에 계룡산 상초암(上草庵)으로 출가하여 조계대사(祖溪大師)의 제자가 되었으며, 연희(衍熙)·정심(正心)에게서 교리를 배운 뒤 1511년 봄 용문산에 들어가서 2년을 지내다가 1.. 2012. 9. 13.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 수당대(隋唐代) 우두선(牛頭禪) 개조(開祖), 윤주 (潤州 강소성) 연릉사람 성은 위(韋)씨. 처음에 유교를 배우고 군서를 연구하면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뒤에 모산(茅山 강소성)의 경법사(炅法師)에게 중이 되어 수학하다. 림중(林中)에서 단좌(端坐)하기 20년 정관(貞觀) 17년(643) 건강 우두산 유서사 (建康 牛頭山 幽棲寺) 북쪽에 선실(禪室)을 짓고 지내다가 어느날 도신(道信)이 와서 일러줌을 받고 심요(心要)를 깨닫다. 647년 법화경(法華經)을 강의하여 기서(奇瑞)를 얻고, 영휘 3년(永徽3년 652) 건업 건초사(建業 建初寺)에서 대품반야경을 강의하고 다시 기서(奇瑞)가 있었다. 고을 원인 소원선(蕭元善)의 청으로 건업 건.. 201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