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법무아

by 정암 2011. 9. 11.
반응형

제법무아

불교의 슬로건이 '무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무아는 인도 정통파 철학사상인 우파니샤드 이래 '아(我)'라는 윤회와 해탈의 주체적 실재(實在)를 전제로 하는 유아설(有我設)에 대한 불교의 특색이기도 하다.

'아'라는 것은 원래 나 자신이다. 그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존재다. 세상에서 이만큼 자명한 것도 없다. 물론 철학적으로 그 본질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시끄러운 문제가 많다. 데카르트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옛부터 서양철학에서도 중요 과제가 되어 왔다. 특히 근대유럽은 자아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새로운 인류문화를 전개시켜 왔다. 이처럼 실감에서나 철학적 사고에서나 자아의 부정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아'라는 말을 일상어로까지 채택하고 있다.

이 경우의 무아는 이를테면 '무아의 경지'라고 말할 때처럼 정신없이 어디에 열중하는 것, 또는 자기망각, 멸사봉공적(滅私奉公的) 인생태도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적 자아확립과 거기에 근거한 인생관과는 반대의 자세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견해는 불교를 근대적 자아관에 저촉된다고 보기 쉬운 요소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무아를 철학적 견해가 아니고 단순한 실천적 문제로서 파악하고 있는 한에서는 어느 정도 정당한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보다 깊은 뜻이 있다. 불교에서 무아설의 범형(範型)이 되고 있는 것은 오온무아라는 것이다. 팔리어 율장의 한 구절은 무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색(色 : 형태 있는 것, 즉 육체)'은 아(我 : 자기)가 아니다. 만약 색이 자기라면 이 색이 병에 걸리는 일은 없으리라. 또 색에 대해서 '나의 색은 이러하라(이를테면 건강하여라) 그렇게 되는 일 없어라(늙지 말라, 죽지 말라)'하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색은 아가 아니기 때문에 병에 걸리고 이렇게 저렇게(자유로이) 할 수가 없다… 이 '수(受 ; 괴로움과 즐거움의 감각)'가 자기란 말인가… 이 '상(想 ; 이미지를 생각에 떠올리는 작용, 표상화)'이 자기란 말인가… 이 '행(行 ; 의지의 작용)'이 자기란 말인가… 이 '식(識 ; 인식, 판단의 작용)'이 자기란 말인가…"

이렇게 육체와 네 가지 대표적 정신작용을 제시한 다음 그 중 어느 것도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따로 어느 곳에 있는 것도 아니므로 자기라는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 경우 '아'는 '자유로운 것' '병 따위에 걸려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견해가 전제되어 있다. 이 점을 취해서 한역불전은 '아(我)란 상일주재(常一主宰)의 뜻'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오온외에 눈․귀․코․혀․몸․뜻의 '육입(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드는 경우도 있다. 육입이란 요컨대 자기라고 생각되는 것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실체가 아님은 물론이다. 제법무아란 이렇게 우리가 자기라고 생각하거나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는 내가 아니며 따라서 어디에도 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설득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집이다. 바로 바로 이런 아집에서 부처님은 여러 가지 죄악의 근원을 찾아냈다. 아집은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낳는다. 그것이 달성되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다. 구부득고(求不得苦)가 그것이다. 우리는 통상 '나'란 상주영원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한다면(無常). '나'라고 불변일 수는 없다.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무아의 증거이다.

그렇다고 불교가 완전히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마는 않다.

'진리를 등불 삼고 자신을 등불 삼으라(法燈明 自燈明)'는 부처님의 유훈은 분명히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제행은 무상이다. 결코 태만해서는 안된다'라고도 했다. 모든 것이 무상하므로 열심히 수행해야 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실천의 주체'를 전제하는 것이다.


관련글 :
삼법인(三法印)
무아(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반응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궤(호궤)합장  (1) 2011.11.22
중관파와 유가행파  (0) 2011.10.26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0) 2011.10.24
자자(自恣)와 포살(布薩)  (0) 2011.09.04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0) 2011.09.02
즉심시불(卽心是佛)  (0) 2011.08.08
집착(執着)  (0) 2011.08.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