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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12

사굴산문 사굴산문 신라 문성왕때 선승 범일(梵日)이 강릉 굴산사(?山寺)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이름하여 사굴산문(??山門)이라 했다. 개조인 범일은 831년 당나라에 건너가 염관제안(鹽官齊安)에게 법을 배웠다. 이때 스승 제안으로부터 동방의 보살이란 찬양을 받았다. 847년 귀국해서 산문을 열었다. 범일은 특이한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을 주장했다. 선(禪)의 원류를 석가모니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석가모니가 진귀조사로부터 선을 전수받았다는 학설이다. 그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개청(開淸)과 행적(行寂)등 10대제자가 있었다. 특히 고려 중기에 선을 중흥시킨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도 사굴산문에서 배출한 인물이다. 구산선문 중에서 가장 성세(盛世)를 누렸다. 사굴산문이 열렸던 굴산사는 역사.. 2011. 1. 31.
희양산문 희양산문 희양산문은 고려 태조 18년인 935년에 정진국사(靜眞國師) 긍양(兢讓)이 문경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창한 산문이다. 희양산문의 개조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선문조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에 따르면 지증도헌(智證道憲)이 개산조사로 되어 있다. 긍양이냐 지증국사 도헌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긍양개산조사파에선 도헌이 봉암사를 먼저 세우기는 했어도 그를 희양산문의 개산조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헌이 북종선의 맥을 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례로 보건대 도헌과 긍양 어느 쪽으로도 쉽사리 무게중심이 옮겨 갈 것 같지는 않다. 긍양은 고려 태조 혜종 정종 광종의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형초 등 많은.. 2011.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