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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위산대원(潙山大圓)771(代宗 6) ~ 853(宣宗 7) 위산대원(潙山大圓)771(代宗 6) ~ 853(宣宗 7) 위산(潙山)은 중국(中國) 호남성(湖南省) 장사부(長沙府) 영향현(寧鄕縣)에 있는 산 이름. 소위산(小潙山)과 구별하여 대위산(大潙山)이라고도 함. 師가 이 곳에 住錫하였으므로 號가 됨. 대원(大圓)은 당나라 대종(代宗)이 내린 시호(諡號). 이름은 영우(靈祐). 복주(福州). 長溪 .趙氏의 아들. 15세에 출가하여 本郡 建善寺의 法常에게 중이 되고, 23세에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가 됨. 元和(806~820)末年 懷海의 命을 받아 長沙로 가든 도중 大潙山을 지나다가 머무르니 郡民이 다투어 모여들었다. 드디어 절을 짓고 禪․敎를 40여 년 동안 說하다가 大中 7(853)년 正月에 無疾而坐化하니 壽가 83이었다. 뒤에 그의 제자 慧寂은 仰山에서 .. 2011. 6. 3.
용수(龍樹, Nagarjuna) 용수(龍樹, Nagarjuna) ‘제2의 석가’, ‘8종의 시조(始祖)’로 불리는 불교의 중흥조(中興祖). 2~3세기 남인도의 승려로 중관학파(中觀學派)의 시조로 불리기도 한다. 범어로 나가르주나. 여기서 나가는 뱀이나 용의 뜻이다. 그리고 아르주나는 고대 인도의 영웅이름이다. 인도에서는 나가족이란 뱀신 신앙을 가진 종족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용수는 나가족의 영웅이란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용수(龍樹)로 의역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박람했다고 한다. 천문지리와 4베다에 정통했다. 그런데 위대한 성인이 대개 그러했듯이 그도 처음에는 음욕과 환락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세명의 친구들과 작당하여 궁중에 들어가 궁녀들과 음통(陰通)했다. 용수도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결국 발각이 되어.. 2011. 5. 26.
소타이(蘇陀夷 Sudaya, Suddna) 소타이(蘇陀夷 Sudaya, Suddna) 수타(須陀)라고도 쓰고 선시(善施) 라 번역. 부처님 제자중의 한명. 7살 때 석존께서 “너의 집이 어디냐?”하고 물음에 대하여 “삼계에 집이 없나이다”고 대답한것이 석존의 뜻에 맞아 20세가 채 못되어 대중중에 갈마수계함을 허락하였다 함. 2011. 5. 24.
난타(難陀 Nanda) 난타(難陀 Nanda) 1) 가비라성의 왕자. 석존의 배다른 동생. 목우(牧牛)난타와 구별하기 위해서 손타라(孫陀羅)난타(Sundarananda)라 함. 그는 아내 손타라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출가를 좋아하지 않고 자꾸만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려는 것을, 부처님이 방편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괴로운 모양을 보여, 그를 인도하여 불도에 귀의케 함. 2) 부처님 제자. 본래 소를 먹이던 사람이었으므로 목우난타(牧牛難陀)라 함. 3) 유식(唯識) 10대론사(大論師)의 한 사람. 신훈종자(新薰種字)에 대한 일설과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견분(見分)ㆍ상분(相分)의 2분설(分說)을 제창하였다.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등을 주석(註釋). 4) 【범】 Nandā 빈녀(貧.. 2011. 5. 16.
묵호자(墨胡子) 묵호자(墨胡子) 신라스님. 혹은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했다고 하는 인도스님. 눌지왕 때에 고구려에서 신라 일선군(一善郡)에 가서 모례(毛禮)의 집에 굴방을 만들고 지내다. 양나라에서 사신이 가지고 온 향 사용법을 가르치고, 향을 태워 공주의 병도 고쳤다고 한다. 그 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에는 아도(阿度)와 동일인이라 하였으나 알 수 없다. 2011. 5. 13.
강승개(康僧鎧) 강승개(康僧鎧) 상가바르만의 한역 이름. 인도 출신. 강(康) 자는 그의 출신 지역을 가리킴. 252년에 낙양에 도착하여 백마사에 머물면서 욱가장자소문경(郁伽長者所問經), 불설무량수경, 사분잡갈마(四分雜 摩)등 총 3부 4권을 한역하였으며 현재 그 모두가 남아 전한다. 일설에 따르면 불설무량수경의 번역자는 강승개가 아니라 보운(寶雲)이라고 하거나,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는 설, 불타발다라와 보운이 공역했다는 설 등이 있다. 승가발마(僧伽跋摩). 2011. 5. 13.
겸익(謙益) 겸익(謙益) 백제스님. 백제 율종의 시조. 526년(성왕 4) 인도에 건너가 상가나사에서 율을 연구 후 배달다 삼장 등 범승과 함께 범어로 된 율문을 가지고 귀국. 흥륜사에서 28명의 중들과 72권을 번역, 백제 불경의 융성을 기했다. 2011. 4. 30.
불음(佛音) 불음(佛音) 고대 인도의 승려로 남방불교 최대의 주석가(註釋家). 부다가야에서 태어나 5세기 전반에 활동하였다. 팔리어로 부다소가, 범어(梵語)로는 부다고샤라고 한다. 의역하여 불음(佛音), 각음(覺音)이라고 한다. 남인도 지방을 두루 편력하면서 학문과 교양을 쌓았다. 이때 대사파(大寺派) 즉 마하비하라파의 장로(長老) 붓다미타와 조티팔라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마하나마왕(재위 410~432)시대에 스리랑카의 수도 아누라다푸라에 있던 대사(大寺?마하비하라)에 머물렀다. 이곳은 남방상좌부(南方上座部) 대사파의 본산이었다. 불음(佛音)은 그곳에 비장된 고대 싱할리어(語) 주석서를 팔리어로 옮겼다. 그리하여 대사파(大寺派) 정통설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마하나마왕이 죽고 국정이 혼란해지자 스리랑카를 떠났.. 2011. 4. 25.
호법(護法) 호법(護法) 인도 대승불교 유가행파(瑜伽行派)의 학승. 유식십대론사(唯識十大論師)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범어로는 다르마팔라. 음역하여 달마바라(達磨波羅)라고 한다. 6세기초에 달라비다국 대신(大臣)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나라 공주와의 결혼식 날 저녁에 출가하여 절에 들어갔다. 아마 호법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단한 심고(心苦)를 겪었을 것이다. 이후 호법은 학문에 진력, 대소승에 모두 정통하였다. 특히 유식학(唯識學) 연구의 대가로 꼽힌다. 마가다국의 나란다사에 머물면서 교화에 힘썼다. 29세 이후로는 대보리사에 숨어 살면서 선관(禪觀)을 닦았다. 세친(世親)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에 주석을 가해 세친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호법의 학설은 현장(玄?)을 통해 중국에도 전해졌다. 32세에 입적했.. 2011. 4. 22.
향성(香性 Drona) 향성(香性 Drona) 산스크리트어 Drona 바라문의 이름. 부처님께서 구시나성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하시자 화장하였다. 그 때 여러 나라의 왕들이 사리(舍利)를 얻기 위하여 서로 싸움이 일어났을 때 지혜 있는 향성(香性)바라문의 중제(仲栽)로 사리를 각국이 평등하게 분배하여 무서운 전쟁을 피했다고 함. 2011.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