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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128

균뎨사미(均提砂彌 Kunti) 균뎨사미(均提砂彌 Kunti) 바라문의 아들. 7세에 사리불에게 출가. 후에 아라한과를 증득. 스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종신토록 사미로 시봉하다. 2011. 4. 10.
안혜(安慧) 안혜(安慧) 6세기경 인도 유식불교의 권위자. 유식 10대론사(大論師)중의 하나다. 범어로는 스티타마티. 실치라말저(悉恥羅末底)라고 음역한다. 의역하여 안혜(安慧)다. 그는 남인도의 경라라국(境羅羅國)사람으로 같은 유식 10대론사의 하나인 덕혜(德慧)의 제자였다. 덕혜(德慧)와 안혜(安慧)는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유식(唯識)을 계승했다. 이른바 무상유식(無相唯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안혜는 발라비국에 성(聖)밧파디야사(寺)를 세웠다. 다라세나 2세가 여기에 보시했다는 비문이 남아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덕혜와 견혜(堅慧)가 이 절에 머물면서 논(論)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의 견혜가 안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저서로는 구사론을 주석한 아비달마구사석광주진실의(阿毘達磨俱舍釋廣註.. 2011. 4. 7.
부루나 부루나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언변과 수사가 가장 뛰어나 설법제일(說法第一)로 불렸다. 범어로 푸라나라고 한다. 부처님이 태어난 가비라성(迦毘羅城)에서 같은 날 태어났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설법으로 9만9천명을 교화했다고 한다. 그는 수나파란타로 변경포교를 떠났다. 스스로 안락과 미래가 보장된 도시를 떠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일대모험을 한 것이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교화시킨 후 입적했다. 2011. 4. 5.
진나(陳那 Dinnaga) 진나(陳那 Dinnaga) 남인도사람으로 5~6세기에 활약한 불교논리학의 대성자. 범어로 딘나가. 의역하여 대역룡(大域龍)이라고 한다. 진나(陳那)는 음차한 것이다. 인명론(因明論)을 대성했다. 남인도 브라만가문 출신으로 불교로 개종한 후 출가했다. 이때 독자부(犢子部) 나가닷타의 조언과 충고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세친(世親)의 문인이 되어 삼승(三乘)의 전적을 배웠다. 특히 유식과 논리학에 정통하게 되었다. 새로운 논리학을 정립함으로써 인도논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진나는 인식의 근거로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이량(二量)을 인정했다. 따라서 유식설에서 견분(見分) 상분(相分) 자증분(自證分)의 삼분설(三分說)을 주장했다. 저서로는 정리문론(正理門論) 무상사진론(無相思塵論) 관총상.. 2011. 4. 1.
아쇼카왕 아쇼카왕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왕. 한역불전(漢譯佛典)에는 아육왕(阿育王) 아수가(阿輸迦)로 기록되어 있다. 마우리아왕조의 개창자인 찬드라굽타의 손자이며 빈두사라왕의 아들이다. 마우리아왕조는 아쇼카왕 시절에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는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원래 아쇼카왕은 성질이 사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부왕이 죽은 후 배다른 형 수사마를 죽이고 즉위했다. 아주 광폭하고 잔인했다. 그런데 우연히 사문(沙門)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불교로선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제왕이 반 불교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한 일일 것이다. 아쇼카왕은 자신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석주(石柱)를 세우는 독특한 석주.. 2011. 3. 29.
아난다 아난다 불경을 보면 흔히 나오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에서 나가 바로 아난다이다. 대부분의 경전을 그의 기억에 의존할 만큼 그는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칭송을 받았다.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수려한 용모를 가졌다고 한다. 25년동안이나 부처님을 시봉했다. 그래서 아난다가 가장 많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 입적 후 칠엽굴에서의 불경 결집 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부분이 그의 기억의 창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관련글 : 십대제자 다문제일 아난다 2011. 3. 29.
아나율 아나율 범어로 아니루타. 부처님 십대제자중의 한분. 지혜의 눈이 밝아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렸다. 비록 실명(失明)했지만 처절한 수행 끝에 천안(天眼)을 얻었다. 출신은 석가족의 요리사라는 설과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라는 설이 맞서 있다.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있는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졸다가 부처님께 질책을 들었다. 이후로 부처님께 참회하고 절대로 잠을 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명하였으나 지혜의 천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일심통천(一心通天)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2011. 3. 29.
가전연 가전연 십대제자 중 논의제일(論議第一)로 불린다. 불교이론에 박람강기했다. 중인도 서부에 자리잡은 아반티국에서 왕사(王師)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명으로 부처님을 모시러 갔다가 설법을 듣고 감동해 출가했다. 범어로 마하 카차야나. 대가전연, 마하 가전연,가다연니자으로 불린다. 그의 가계는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아반티국의 악생왕(惡生王)을 보필하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언설과 변재로써 인도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중생교화에 힘썼다. 최고의 포교사였던 것이다. 관련글 : 십대제자 2011. 3. 28.
청변(淸辯 Baviveka) 청변(淸辯 Baviveka) 남인도의 승려로 타나갈책가국에서 태어났다. 범어로 바비베카. 바비폐가(婆毘吠伽)로 음역한다. 호법(護法)이 마가다국에서 뇌야연기론(賴耶緣起論)을 주장한데 대해 용수(龍樹)와 제바(提婆)가 주장하던 일체개공(一切皆空)의 학설을 지지했다. 후일 파타리성 남쪽 산속 집금강신을 받드는 곳에 가서 다라니를 외면서 선정에 들었다. 저서로는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2권, 반야등론(般若燈論)15권 등이 있다 2011. 3. 27.
각덕 각덕 신라 스님. 구법승의 선구자로서 540년(진흥왕1) 양나라에 건너가 여러 명승에게 도를 배우고 549년 양나라 사신과 함꼐 우리 나라에 최초로 불사리를 가지고 돌아와 흥륜사 앞에서 진흥왕의 영접을 받았다. 2011.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