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12 자은종 자은종 고려 및 조선초에 있었던 불교종파중의 하나. 자은종의 이름이 최초로 비치는 것은 칠곡 선봉사(僊鳳寺) 대각국사(大覺國師) 비문(碑文)이다. 이 비문에 중국의 천태 현수 남산 자은 조계 서천범학(西天梵學)을 일시에 전수받았다고 나온다. 또 자은종의 이름은 자정국존(慈淨國尊) 미수(彌授)의 법주사(法住寺)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에도 나온다. 자은종과 유가업(瑜伽業)은 동일시되어 쓰였다. 고려초 유가유식의 대가인 해린(海麟)과 제자 소현(韶顯)이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개창조인 현장(玄?)과 규기(窺基)를 조사로 받들었다. 그리고 그 교학을 따르면서도 자은종이라 하지않고 유가업이라 칭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처음에는 유가업이라 하다가 후일 자은종으로 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조선초 선교양종 .. 2011. 2. 14. 관조(觀照) 관조(觀照) 일반화된 불교 용어 중 대표적인 불교 말이다. 본래의 뜻은 지혜로써 사리(事理)를 관찰하고 밝게 깨친다는 뜻이다.[俱舍論] 그런 의미에서 예술 작품을 주관적인 견해 없이 관찰하거나 미술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지적인 미의식(美意識)의 직관(直觀)을 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와 같이 사색적인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2011. 2. 13. 극락(極樂) 극락(極樂) 흔히 행복하고 안락한 곳을 표현할 때 의례 극락이라는 표현을 쓴다. 극락의 참된 뜻은 잘 몰라도 막연하나마 좋은 곳, 이상적인 곳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막연하나마 누구나 부러워하는 극락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여기 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극락이란 범어 sukhavati라는 말(행복이 있는 곳)의 한역이다.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 억 국토를 지난 곳에 아미타여래의 국토가 있으며 그 곳은 모든 것이 원만하고, 생사, 춥고 더움, 근심 걱정 등의 모든 괴로움이 전혀 없는 세계라고 한다. 사바세계의 서쪽에 있는 청정국토(淸淨國土)라고 해서 서방정토라고도 한다. 또 이 곳에 왕생(往生)하는 사람은 그 근거에 따라 상품상생(上品上生),상품중생(上品中生),상품하생.. 2011. 2. 13. 수행(修行) 수행(修行)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다.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을 삼가하고 닦는 노력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한다. 즉 도를 닦고 법에 따라 행한다는 뜻이다. 정진(精進)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불교를 관념으로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불교를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신-구-의를 통해 불도를 실천하되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행보다는 신(信;믿음)을 강조 했으며 믿음에 철저함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믿음도 관념화할 위험이 있다. 어쨌든 수행과 깨달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수행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관련글보기 : 삼업 (三業), 삼학 (계정혜 戒․定․慧) 2011. 2. 13. 유명무실(有名無實)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만 있고 영원한 (무상하지 않은)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물체는 그 이름은 있으되 인연이 다 되면 그 이름조차 없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여기 수레가 있다고 하자, 이 수레는 사람의 손으로 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어서 지어놓고 이름 하여 수레라 하지만 이것이 어느 때건 부서지고 망가지면 수레라는 이름조차 없어진다는 것이다. 불교용어로 인연가화합(因緣假和合)인 것이다. 그래서 이름은 있으되 실체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유명무실한 것이 많이 있다. 예컨대, 가정의례준칙 같은 것이 그러한 예이다. 결혼식을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간소하게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실천되지 않고 있어 초호화판 결혼식, 사치를 극한 혼수, 현란한 화환.. 2011. 2. 13. 유야무야(有耶無耶) 유야무야(有耶無耶) 마음이 유(有).무(無) 양 변에 쏠리어 주저주저하고 결정을 못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불교에서는 사구분별(四句分別)이라 해서 어떤 현상을 관찰함에 있어 네 가지의 논리방식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상(事象)에 대해 있다(有)고 보는 견해와 없다(無)고 보는 견해, 있으며(有) 또한 없다(無)고 보는 견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견해다. 그래서 결국 있느냐 없느냐고 물으면 형이상학적인 명제(命題)에는 대답을 안 한다. 즉 인 것이다. 란 [있느냐? 없느냐?]는 선적(禪的)인 질문이다. 이른바 선문답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일반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론 없는 상태를 유야무야라고 하게 된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흐지부지되고 만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2011. 2. 13. 착안(着眼) 착안(着眼) 눈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즉 마음을 써서 주의하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着)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마음이나 사물에 집착하여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라고 한다. 애착. 집착. 탐측(貪着)등.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 [내가 성불한 이래로, 갖가지 인연 갖가지 비유를 들어 널리 설하여 가르치는 등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引導)하여 모든 에서 떠나게 했다.]고 했다. 이처럼 상(想)에 집착하면 , ㅡ 지금은 어떤 일의 실마리가 될만한 좋은 생각이라는 뜻 ㅡ 마음에 집착하는 것을 , 법(法)에 집착하는 것을 이라고 했다. 착안은 좋은 의미로서 어떤 일을 주의해서 마음 쓰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학자들이 어떤 사실에 착안해서 연구한 끝에 큰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많다. 뉴턴이.. 2011. 2. 13. 탐욕(貪欲) 탐욕(貪欲) 지나치게 탐내는 욕심,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는 것을 탐욕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세 가지 독(三毒) 중의 하나로 탐욕을 꼽는다. 삼독이란 제일 먼저 탐욕이고, 둘째 성내고 성미를 부리는 것(瞋心)이고,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은 탐욕에서 비롯된다. 탐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연 조급해지고 난폭해져서 성내고 짜증을 부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지 못하니까 점점 어리석어지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한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에 [여러 고(苦)의 원인은 탐욕이니....]라고 했다. 석존께서 인간의 탐욕을 표현하여 [저 수미산을 모두 금으로 화(化)한다 해도 단 한 사람의 탐심도 채우지 못한다.]고 했다. 근간의 모 .. 2011. 2. 13. 희사(喜捨) 희사(喜捨) 아무 후회 없이 기쁜 마음으로 재물을 내놓는 일을 희사라고 한다. 어지간한 사람은 흉내도 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를 수행덕목(육라바밀)의 첫째로 꼽는다. (布)는 와 같은 라는 뜻이며, (施)는 베푼다는 뜻이다. 보시는 재물을 베푸는 (財施)로 나눌 수 있다. 이 보시야말로 아무런 반대급부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의 베풀음이다. 희사도 이런 뜻이어야 한다. 그러나 타산적인 속셈이 있는 희사는 참다운 희사가 아니다. 인간사회란, 서로 베풀고 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다. 크게는 자연이 베푸는 혜택으로 생물이 살고 있으며,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받은 만큼의 혜택을 자연에 돌려주면서 살아간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여서, 작게는 부모 자식 등 가족끼리, 넓게는 이웃끼리.. 2011. 2. 13. 이전 1 ··· 285 286 287 288 289 290 291 ··· 3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