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3212

공문(空門) 공문(空門) 불교를 말한다. 불교는 공(空)의 사상으로써 그 전체를 꿰뚫는 근본 뜻을 삼는 것이므로 공문이라 한다. 영원한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부정하기 위한 공상의 법문을 이름. 만물은 공이라고 보는 법문. 공문(空門) 4문의 하나. 불교의 총명칭. 불교는 주로 공의 도리를 열반의 문으로 삼기 때문이다. 유(有)에 집착함을 다스리기 위해 온갖 사물을 실체와 자성이 없다고 말한 공리(空理)의 법문 2011. 7. 30.
공미(供米) 공미(供米) 부처님 공양하는 쌀을 말한다. 다른말로 공양미라고 한다. 불향(佛餉), 불공(佛供) 이라고도 한다 2011. 7. 30.
불성(佛性) 불성(佛性) 범어 buddhadhatu. 일체 중생에게 갖추어 있는 부처 될 성품. 불(佛)은 각오(覺悟), 성(性)은 불개(不改)의 뜻으로 인과(因果)를 통하여 변개(變改)하지 않는 자체(自體)를 불성(佛性)이라 이른다. 불타(佛陀)의 본래의 성질 즉 불타의 각성(覺性), 또는 일체중생이 부처가 될 가능성. 여래성(如來性)이라고도 하며 여래장(如來藏)․각성으로도 번역된다. 초기 불교에서 불보살 이외의 자가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설은 없었으나, 뒤에 이르러 일반 중생도 후천적으로 수행에 의하여 불성이 얻어진다고 하였고, 다시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나 미망(迷妄)에 가려 나타나지 않을 뿐 그것을 떨쳐버리면 불성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열반경(涅槃經)》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 모든.. 2011. 7. 29.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에 나오는 법구(法句)로서, 모든 현상은 오로지 마음이 만든 것이고 마음이 창조해 낸 것이라는 뜻이다. 주의 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 ‘마음이 창조했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영역, 마음의 영역, 즉 번뇌 망상 등 잡념, 번민, 괴로움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사에서 기쁨과 슬픔, 근심과 걱정 등 고락(苦樂)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다 당사자의 마음 곧 망상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번뇌 망상도 모두 마음의 피조물일 뿐이다. 삼계(三界, 욕계.색계.무색계)도 모두 마음의 피조물일 뿐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중생의 눈이고,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 2011. 7. 29.
분별심(分別心) 분별심(分別心) 사량 분별로서 우리말로는 ‘알음알이’ ‘알음알음’이라고 한다. 분별심이란 요즘 개념으로는 분석력이다. 분석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학문의 탐구도 사업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대승불교와 선에서는 분별심을 대단히 비판한다. 그 이유는 있지도 않은 비실재를 있는 것처럼 상상하여 갖가지 망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망분별이라고 한다. 관련글 : 알음알이 2011. 7. 28.
일체개공(一切皆空) 일체개공(一切皆空) ‘모든 존재는 다 실체가 없다’ ‘텅 비어 있다(空)’는 뜻이다. 풍선처럼 비누방울처럼 ‘속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방이긴 방인데 아무도 없는 ‘빈방’인 것이다. 이와 같이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 이것을 ‘무자성’ ‘공’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유형은 물론 번뇌, 망상 등 무형적인 것도 모두 포함된다. 모든 것은 연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체개공’은 니힐리즘이 아니다. 현실직시이다. ‘일체는 모두 공’이라는 인식 아래, 모든 존재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집착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첩경이다. 2011. 7. 28.
선요(禪要) 선요(禪要)선요(禪要)는 “禪의 요체”에 대한 설법집이다. 고봉스님의 도(道)를 깨친 후 20여년간 설법했던 것을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직옹거사가 편집하여 ‘선요’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총 29장으로 되어있으며 “큰 뜻(大志)을 세워 현관(玄關)을 꿰뚫을 것”을 본지(本旨)로 한다.우리나라에는 언제 유입되었는지는 확실한 자료근거가 없으나, 1358년 지리산 덕기사에서 중각(重刻)한 판본을 시작하여 1399년 가야산 위봉寺에서 개판(開版)하였으며, 1565년 은진 쌍계사, 1604년 하동 쌍계사(은진판 복각), 1608년 송광사(하동판 복각), 1633년 석왕사(하동판 복각), 1634년 천관사(석왕사판 복각), 1635년 용장사(천관사판 복각), 1681년 운흥사(용장사판 복각), 1686년 징.. 2011. 7. 28.
열반송(涅槃頌) 열반송(涅槃頌) 임종에 즈음하여 읊는 게송(=詩)을 ‘열반송’이라고 한다. ‘송(頌)’ ‘게송(偈頌)’이란 운문을 뜻한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 팔리어 ‘닙바나’의 한자 표기로서 욕망과 번뇌, 괴로움이 소멸된 세계를 뜻한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탐진치 등 번뇌가 소멸된 것도 열반이고 육체가 소멸된 것도 열반이기 때문에 죽음과 동의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또 우리는 육체가 남아 있는 한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육체마져 사라져야만 그 때 비로소 완전한 열반에 이른다고 하여 그것을 ‘반열반’ ‘무여열반’이라고 한다. 삶에서 괴로움이란 엄연히 존재한다. 죽기 전에는 괴로움과 이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어떻게 인식, 생각하느냐?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 2011. 7. 26.
불이 (不二) 불이 (不二) 일실(一實)의 리(理)가 여여평등(如如平等)하여 피차(彼此)의 분멸(分別)이 없는 것. 즉 상대적인 차별을 여의고 절대적 차별이 없는 것을 이름. ‘불이(不二)’란 ‘둘이 아님’ 즉 ‘하나(一)’를 뜻한다. 번뇌와 괴로움은 ‘하나(一)’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항상 ‘둘(二)’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고뇌는 주객의 분열, ‘나의 것’ ‘너의 것’으로부터 싹튼다. ‘주관과 객관’의 분열은 숫자 ‘2(二)’를 만든다. 중생은 이 숫자 ‘2’에 입각하여 대상을 차례차례 분할하여 차별세계를 만든다. 비로소 내적(內的) 외적인 투쟁이 전개된다. 고(故)로 불도수행의 가장 큰 과제는 주관과 객관의 분열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 지혜를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한다. 선방에서 분별심을 갖지 말라고 하는 .. 2011.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