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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해우소 절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말로, 우울한 마음을 푸는 곳이라는 뜻. 순천 선암사, 송광사 해우소가 유명하다 2011. 12. 25.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 《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은 우지(盓止 1226∼1292)의 문집이다. 분권(分卷)은 되어 있지 않으나 시편(詩篇)·시보유편(詩補遺篇)·문편(文篇)·소편(疏篇)·표편(表篇)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문(文)을 소(疏)나 표(表)와 구분한 점이 특이하다. 문(文)은 제문(祭文)·발원문(發願文)으로 되어 있다. 부록으로 김강(金糡)이 쓴 비명 (碑銘 1314)이 있다. 서문은 명우부갈(明友不渴)이 썼다(1297). 충지의 시문을 송광사의 설월(雪月)이 수집해서《원감록(圓鑑錄)》이라는 이름으로 중간(重刊)했는데, 이때 중간서(重刊序)는 이능화(李能和)가 쓰고(1918), 편자인 설월(雪月)은〈서언(緖言 1918)>이라고 하여 권말(卷末)에 붙였다. 2011. 12. 15.
한국불교의 전래 불교의 전래 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6월 전진(前秦)의 왕 부견이 순도(順道)스님을 통해 불상과 경전을 보내오면서부터다. 고구려에서는 이때 성문사(省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했으며 다시 2년 뒤에 아도(阿道)스님이 오자 이불난사(伊佛蘭寺)를 지어 머물게 했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있는 이 기록은 한국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을 말해 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백제에는 침류왕 원년(384년)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으로부터 배를 타고 건너왔다. 《해동고승전》은 이때 왕이 몸소 교외에까지 나가 마라난타를 맞았으며 궁중에 초청해 공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은 고구려나 백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 2011. 12. 11.
행원 행원 일을 이루고자하는 마음(願)과 실천(行) 대승보살도를 실천 궁행하며,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 관련글 : 보현행원품 보현행 보현보살 2011. 11. 30.
해붕집(海鵬集) 해붕집(海鵬集) 《海鵬集》은 전령 (展翎 ?∼1826)의 문집이다. 전령은 자가 천유(天遊), 호는 해붕(海鵬)이며, 묵암최눌(默庵最訥)의 법을 이었다. 《해붕집》은 1권1책으로, 간행시기와 장소를 알 수 없다. 내용은 법어(法語)와 경찬(敬讚) 131편, 詩 63편, 부록으로 장제(張濟)와 장옹(張瞈)이 쓴〈題海鵬大師詩皼韻〉이 있다. 선대의 조사나 거사, 그리고 당시 생존하던 훌륭한 여러 분들에 대한 찬시만을 따로 모아〈경찬敬讚〉류로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서발문이나 행장 등은 없다. 2011. 11. 22.
호궤 호궤 경례(敬禮)하기 위해 두 무릎을 꿇어 땅에 대고 두 다리를 세우고 몸을 버티는 자세를 말한다. 호궤한 자세에서 합장을 하면 그것을 우리는 호궤합장이라 부른다. 좌우의 두 무픞을 번갈아 땅에 대고 꿇어 앉는 것. 이것은 서역지방과 인도에서의 세속 일반에서 행하는 예법의 하나. 불법에서는 보통으로 왼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좌궤를 하는 것이 본법이나 행사가 오래 걸려서 피로 할 경우에는 이것을 막기위해 호궤를 허락한다. 관련글 : 합장 장궤(호궤)합장 2011. 11. 22.
혜해탈 혜해탈 지혜에 의해서 번뇌장애를 완전히 해탈하는 것이나 해탈하는 자. 또는 지혜로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을 말한다. 관련글 : 해탈(解脫) 아라한 2011. 11. 21.
행입 행입 달마의 이입사행 중 이입의 하나. 행입은 이(理)에 의해 행(行)이 일어나고 행에 의해 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 관련글 : 이입사행(二入四行) 달마(達磨/?~528 ?) 2011. 11. 9.
호광 호광 부처님 미간사이에 있는 백호의 빛을 말한다. 이는 부처님의 지혜의 빛에 비유되기도 한다. 관련글 : 백호상(白毫相) 2011. 11. 2.
해태 해태(懈怠) 태만, 게으름 피우고 노력하지 않는것으로 불도를 수행하는데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이 바로 조심하고 해태하지 말라 였다. 해태(懈怠)는 정진(精進)의 반대말로 일종의 게으름을 말한다. 악(惡)은 막고 선(善)은 행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열심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게으름은 무상을 자각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것이야 말로 미래를 선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관련글 : 정진(精進) 2011. 11. 1.